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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10년 뒤 내 꿈은 상무, 회사와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이지선 / 에어프로덕츠 코리아 과장


1. ‘드림노트’, 꿈은 이루어진다

입사 10년차라 한창 바쁠 텐데 MBA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10년 동안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긴 했는데, 막상 제가 어떤 분야의 전문가인지 고민하게 되고,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할 텐데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 열정을 쏟을 일이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입사 때 목표한 일을 이루고 나니 슬럼프도 왔고요. 제가 경영 전공이 아니라서 모르는 것도 많은데 MBA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워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되고 제게 맞는 분야도 찾아보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슬럼프를 건전하게 풀었군요. 회사 일 하면서 힘들지 않나요?

학비는 비싸지만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공부가 굉장히 재밌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거워요. 과제도 많고 힘들지만 정말 죽겠다 싶을 때는 방학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에너지레벨이 높은 사람이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는 한 번도 회사만 다닌 적이 없더라구요. 입사 후에도 대학 때 하던 무용을 계속 했고 통역봉사도 하고 중국어학원도 다니고. 뭐라도 건드려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여중-여고-여대를 나왔는데 남녀공학이라 좋아요. 하하.

흔히 대학 졸업하고 취직할 때 회사의 브랜드나 명성을 많이 보는데 좀 달랐나 봅니다. 선택시 기준이 무엇이었나요?

제가 대학 전공이 사회사업이었는데 그 분야를 접고 회사를 알아보다 보니 사실 직무도 잘 몰랐어요. 보통 사람들은 어떤 회사, 무슨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하던데 저는 잘 몰라 제가 하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제 드림노트에 ‘영어를 쓰고 싶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등등 20가지 기준을 적고 거기에 맞는 회사를 찾았습니다.

‘드림노트’라 재밌군요. 그때 적었던 기억나는 조건이 더 있나요?

해외출장도 가고 싶고/ 외국인과 일 많이 하고 싶고/ 나랑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 같았으면 좋겠고/ 고층 건물에서 일하고 싶고/ 연봉은 얼마여야 등등 자잘한 것까지 다 적었어요. ‘회사 위치가 어디였으면 좋겠다’ 도 있었는데 당시 제 활동반경이 집은 구리이고 무용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딱 중간이었으면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보통 원하는걸 기원하잖아요, 저는 항상 노트에 다 적었어요.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다 적어서 보며 기원했습니다.

드림노트가 제대로 이뤄졌나요?

신기했던 것이 입사하고 보니 20가지 조건에 거의 다 부합돼 놀랐어요. 솔직히 이력서를 스무 개 쯤 넣었는데, 면접은 달랑 두 세뿐이 못 보고, 그나마도 떨어지고 마지막에 붙은 곳이 여기였는데, 붙고 보니 딱 찾던 곳이었어요. 마음 졸였던 게 한꺼번에 해소 되더라구요.

합격 비결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좀 전략적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외국계 회사는 보통 신입공채가 없고, 경력직으로 빈자리만 뽑는데, 마침 총무팀에 리셉션 담당 자리가 났어요. 2년제 대학 졸업자 대상이었는데, 열심히 일해서 다른 부서로 옮길 생각을 하고 그 자리로 지원했거든요. 실제로 능력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기도 했구요.

드림노트에 적었던 업무와 괴리감은 없었습니까?

제가 생각했던 업무랑은 차이가 있었어요. 멋있게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출장도 다니고, 영어로 컨퍼런스 콜 하고 싶었는데, 리셉션이었으니까요. 저는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해 금방 비즈니스로 옮길 줄 알았는데 리셉션 업무를 2년동안 했어요. 처음에는 실망도 좀 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자리에서 일 한 것은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좋은 경험이었나요?

제가 대학 때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어학연수를 다녀오지 않아, 외국인을 보면 괜히 울렁증이 있었어요. 그런데 외국인 방문객이 많이 오니까, 짧은 영어라도 자꾸 하다 보니 점점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얘기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좋았어요. 또 하나는 총무일을 하며 전국 각 지역 분들과 두루 알게 돼 나중에 다른 부서로 간 뒤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랬군요. 리셉션에서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다른 부서에 계신 분이 그동안 제가 일하는 걸 보고 데려가셨어요. 엄청 기뻤습니다. 제 인생의 획기적 전환점이었어요. 다른 부서로 가고 싶어서, 2년 동안 레이다망을 켜놓고 회사의 멘토링 프로그램에도 열심히 참석하면서 저를 어필했습니다. 임원들이 지나가면 눈에 띄고 싶어서 갑자기 영어로 막 얘기하기도 하고요. 하하하

꿈꾸던 바를 이루고 나서 일에 매진했나요? 이때 거둔 성과도 궁금합니다.

제가 3년차 때 PM쪽에서 비즈니스팀 대표로 TF팀에 들어가 드디어 글로벌리 일을 하게 됐습니다. 꿈이 이뤄진 거죠. 영어를 정말 원 없이 쓰게 됐거든요. 영어가 봇물 터지듯. 프로젝트를 두개 맡았는데 컨퍼런스콜 하고 출장 가고. 하루 24시간 중 거의 18시간씩 일했어요. 낮에는 이 프로젝트, 밤에는 미국과 다른 프로젝트를 나눠 하며 힘들어서 울기도 했고요. 그래도 맡은 프로젝트를 아주 잘 끝내 미국팀에서도 감사를 전하고 당시에는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하하하 일단 저는 칭찬해주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 힘들었던 것에 대한 보상이 되더라구요. 회사에서 인센티브도 받고. 휴가와 프로젝트 정리를 겸해 한 달 쯤 미국에도 갔다 왔고요. 그때 엄청 뿌듯했죠. 어떤 기분이었냐 하면 ‘정말 나를 불살랐다. 나의 청춘을 바쳤다’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힘든 일을 잘 해낸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같이 일한 직원이에요. 저랑 그때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한 살 위 언니, 그 분이랑 또 다른 분과 셋이서 서로 부둥켜안고 일했어요. 똑똑하고 잘 챙겨준 그 분들 덕에 끝까지 갈 수 있었어요. 회사에서는 저희를 ‘여전사 삼총사’라고 불렀어요.

회사라는 곳이 장밋빛만은 아닌데요.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까?

여직원에게 업무 외적인 일을 시키는 상사가 계셨어요. 여직원을 무시해서라기보다, 예뻐해서 편하게 부탁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저를 예뻐해주신다는 것을 아니까 저도 대부분 기꺼운 마음으로 부탁을 들어드렸습니다. 손님이 왔을 때 커피를 타다 드리기도 하고 가습기 물을 갈기도 하고, 그런데 어느 날 옷을 꿰매달라고 하길래 “이건 안되겠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더니 금세 “알았어, 오케이”하면서 취소하시더군요.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드리고, 못 하겠을 때는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상사도 흔쾌히 받아들이고, 다음에는 부탁하지 않으셨어요.

심부름을 할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나요?

몇몇 여직원들이 저를 안됐다는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 하려면 짜증나지 않아?” 묻기도 하고… 저는 하나도 그렇지 않았어요. 제가 회사에서 맨날 정수기 물을 갈아도 그 일의 가치는 제가 부여하는 거잖아요. 남이 했을 때는 하찮은 일일지 몰라도 그 일을 제가 했을 때는 가치 있는 일로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할 수도 있었고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 회식자리에서 술을 과하게 권하시는 분이 있으면, ‘술을 잘 못먹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리고, 거절해요. 그럼 다음에 더 이상 억지로 권하지 않으시더라구요. 맘속으로 불평하는 것보다,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하면 상대방도 존중해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너지레벨이 높다고 했는데 사람의 에너지라는게 방전도 되기 마련입니다.

네, 방전의 시기가 있었어요. 인생의 위기가 흔히 ‘삼재’라고 하는 스물아홉에서 서른살 고개에 닥쳤어요. 교통사고도 있었고,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입원도 하고, 병원을 많이 다녔어요. 스트레스가 컸던지 면역력도 떨어지고 많이 힘들었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가족과 종교의 힘이 컸습니다. 덕분에 아무리 안 좋은 일이라도 딛고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입사 때 썼듯이 드림노트를 적으면서 감정을 정리해나갔고, 회사 보스나 직원들도 제 상황을 이해하고 잘 토닥여주셨어요. 이렇게 격려 받다보니, 더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다잡는 계기도 되고, 내성도 생겼습니다. 힘들고 나쁜 상황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것도 배웠고, 그러려면 지혜롭고 현명해야겠구나 깨달았어요. 힘들었지만, 총체적으로 봐서는 살면서 굉장히 도움이 된 시기입니다.



2. 43세 내 꿈은 상무,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다

여성 리더들 대부분은 임원이 되는 꿈을 꾸지 않았으나 열심히 하다 보니 이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지선씨는 구체적인 꿈을 꾸고 있나요?

네, 멋진 꿈 있습니다. 43세에는 임원이 되고 싶어요.

왜 43세인가요? 미래 계획을 다 세워두었습니까?

다른 이유는 없고요. 하하…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뒤라서요. 그리고 아직은 제게 임원이 된다는 것은 저 멀리 높게만 보여요. 여지껏 막연하게만 생각했지,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한 것도 올해 초였어요. 나중에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43세에 임원으로 진입하는 것이 꿈이에요. 임원이 돼 리더십을 발휘해보고 55세쯤에는 정년퇴직해 그 동안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이나 컨설팅을 하며 젊은 사람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넓게 보면 임원이 되는 것도 미래의 또 다른 꿈을 위한 경험이고 과정이라고 할까요. 제 꿈은 공헌하는 것입니다. 임원이 돼 조직에 공헌하고 후에는 사회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큰 그림의 스케치만 해둔 상태이고 어떻게 색칠해나갈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WIN의 김숙경 상무님이나 윤경혜 대표님 등 멘토님과도 의논하고 있고요.

리더가 된 분들은 피플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준비는 하고 있나요?

회사가 외국계라 function이 세분화 되어있다 보니, 제가 입사 10년차 이지만 아직 manager 경험이 없어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들, 예를들면 장학재단 멘토링 부멘토 활동을 하며 리더십 훈련을 하고 있고요, 회사에도 여직원들로 구성된 ‘잼터’라고 커뮤니티가 있어요. ‘재미있는 일터’의 줄임말인데 사장님이 한번 만들어보라고 하셔서 시작됐습니다. 잼터장을 맡아 열심히 했어요. 기획하고 리드하면서 네트워크를 만들고 생일 챙기는 이벤트도 하고 프로그램도 공유하고 카페를 만들어 교류도 하고 멘토링 시스템을 만들어 파트너도 정하고요.

유명인들 중 닮고 싶은 리더가 있나요?

TV 예능프로그램에서 박칼린씨가 합창단을 이끌었을 때 감동받았어요. 리더십이 대단하던걸요. 카리스마 있게 결단할 때는 결단하고, 그러면서 아우르고 저마다의 재능을 끌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뭉뚱그리는 리더십이 아니라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팀의 퍼포먼스를 끌어내는 멋진 리더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1세대 여성 임원들이 앞길을 개척했습니다. 지선씨 같은 후배 중간관리자들은 어떤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생각하는 저희 세대의 과제는 여성 리더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사회가 무서워지고 피폐해지고 있는데 보듬어줄 수 있는 여성의 힘이 필요하니까요. 여성 임원이 많아진다면 드라이해지고 공격적, 경쟁적이 돼 가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의 문제도 바꿔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들은 섬세하고 사려 깊고 배려할 줄 아는 특성이 있는데 우리가 리더로서 충분히 살려나갈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다만 가끔 여성들에게 안주하려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안타까워요. 조금 더 사고를 열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의 뒤를 이으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