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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의미 있게, 재미 있게

김명희 / SK텔레콤 기업컨설팅본부장


1. 소통의 기본은 신뢰

매니저이면 현재 사내에서 허리 정도의 위치인가요?

그보다 약간 위죠. SK플래닛의 전신인 SK마케팅앤컴퍼니 때부터 직급이 사라졌어요. 예전 조직으로 하면 부장급입니다. 시니어 매니저와 주니어 매니저로 나뉘는데 부를 때는 매니저님이라고 해요.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어요. 마케팅을 하고 있고 저는 OK캐시백의 IMC 담당으로 브랜드의 프로모션과 마케팅 활동을 총괄합니다. 전반적인 시장을 보면서 브랜드 전략을 세우고 그 다음에 광고 마케팅 전략의 방향을 잡아 보고하고 지원하는 거죠. 저희는 사업본부의 스태프 조직(사업지원팀) 이라 각 팀의 담당자들과 함께 일을 합니다.

상하 커뮤니케이션이 두루 매끄러워야겠습니다. 소통은 잘 이뤄지고 있는지, 있다면 비결이 있는지 들려주세요.

소통은 가장 기본이면서 늘 힘들어요. 회사는 성장이 목적인 조직이잖아요. 단순히 친교롤 나누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상사에게는 물론이고 후배들에게도 소통을 위해 일에 대해 신뢰감을 주는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따뜻하고 커피 잘 사주고 술 잘 사주는 것 이전에 선배는 일로 신뢰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신뢰를 상사에게, 후배에게 줄 때 소통이 쉬워져요. 그리고 나서 내 캐릭터가 돌직구냐 둘러서 얘기하느냐는 두 번째, 세 번째 겠죠. 그런데 조직은 또 업무성과만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아래를 이끌고 위를 보필하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이를 위해서는 일에 대한 신뢰감에 더해서 ‘저 사람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지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주어야 합니다.

일에 대한 신뢰를 넘어서 인간적인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는 건가요?

네, “저 사람은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은 아니야” 이런 신뢰감을 준다고 할까요. 또 다른 신뢰감인 거죠. 가끔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랬을 텐데 후배를 치는 선배도 있지만 선배를 치는 후배도 있거든요. 특히 저희는 굉장히 자유로운 조직이지만 개인성과를 중요시해 개인의 득과 실에 따라서 돌발행동 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그래서 업무적 신뢰에 더해 인간적인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후배들과 술도 마시고 잘 지내지만 술을 스무 번 마셨다고 해서 후배가 어려울 때 절 찾아오진 않거든요. 한두 번 밖에 안마셨어도 저 선배는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면 찾아와요. 저도 누군가를 찾아갈 때 믿고 얘기할 만한 선배, 멘토링을 구하고 싶은 선배를 찾아가는 것처럼요. 가끔 저와 그리 친하지 않는 후배가 찾아올 때가 있는데 그건 아마도 제가 평소 발언할 때 저를 위한게 아니라 조직을 위한 발언을 했다던가 그런 모습을 보고 찾아오지 않나 싶습니다.

신뢰가 깔려 있으면 소통이 매끄럽게 되던가요?

소통할 때도 ‘어떻게, How to’ 보다 기본적으로 일에 대한 신뢰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보여줘야 해요. 예를 들어 후배들과 소통하기 위해 런치데이, 호프데이 이런 자리도 만드는데 그건 부수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자리를 많이 하기 이전에 업무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소통이 된다고 봅니다. 소통은 전략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신뢰가 쌓여야 매끄럽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제 경험이에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면 저를 믿고 따르는 사람도 있고, 물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요.

남자 조직원들과의 소통에 별 문제는 없나요?

소통에 대한 어려움이라기보다 회사 내에서의 갈등은 저도 겪죠. 최근에는 연차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동료 남자 직원들과 힘들 때가 좀 있어요. 정치색이 강한 사람과 일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저는 일로 풀고 정석으로 풀려고 할 때 윗분과의 친분으로 그걸 극복하려고 한다거나 이런 분들과 불편해요. 서로 맞지 않다보니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있었죠. 그에 대처하는 법을 제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외교적으로 잘 이끌어야 하는데 정치적인 사람을 그냥 응징하려고 한다고 할까요. 제가 그런 스킬이 좀 부족해요. 제가 그 사람과 똑같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겠지만 좀 더 좋은 표현으로 외교적으로 그 순간을 넘길 필요는 있겠다 싶어요.

남자 직원들을 대할 때 외교적으로 대하라는 의미인가요?

네, 제가 그 사람을 공식석상에서든 사석에서든 응징했다면 그와의 관계가 좋아질 리 없거든요. 그런 부분에서는 많이 하수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 직책에서는 더 이상 실력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직에서 얼마나 화합을 잘 하느냐도 필요하니까요. 또 하나가 있는데 임원에게 제 얘기가 사실과 달리 전해질 때도 있어요. 5년, 10년 두고 본다면 제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겠지만 임원도 자주 바뀌다 보니 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적은데 그 임원이 한 두 명과 친하다, 그랬을 때 저에 대한 평판은 제 본 모습 보다는 한 두 명의 정치적 발언에 의해 결정될 수 있더라고요. 그런 냉혹한 현실을 저도 요즘 깨닫고 있어요. 그를 적으로 만들게 아니고 외교적으로 끌어안았어야 했다고요. 제가 이 문제로 힘들어하니까 여자선배가 한마디 해주는데 연륜이 느껴졌어요. “혜령아 그냥 안아줘 걔, 뭘 투덕투덕” 그냥 안아줘. 제가 그렇게 했어야 했다 싶은데 아마 저는 캐릭터상 한참 걸릴 것 같고 못할지도 몰라요.

그런 기술이 필요한 연차군요. 정치적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치지도 않고.

딱 맞는 말입니다. 제가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과정을 3개월 들었는데 하반기 수업 때 나의 리더십스타일을 평가 받아요. 스스로 평가하는 게 있고 회사의 상사와 아래 직원들에게도 이메일로 설문을 해요. 그 결과를 자료집으로 묶어 주는데 그 날이 지금도 기억나요. 퇴근하고 오후 7시쯤 도착했는데 그 날은 평소 주던 도시락과 자료집을 같이 줬어요. 그걸 들고 강의실로 들어가니 여느 때와 달리 조용한 거예요. 다들 자신의 리더십 평가 내용을 읽고 있는데 표정들이 안 좋아요. 저도 읽었는데 업무 추진성이나 화합 이런 부분은 점수가 아주 좋게 나왔는데 점수가 되게 안 나온 부분이‘정서적 원숙함’이었어요.

정서적 원숙함, 쉽게 말하면 감정적이라는 건가요?

세부 항목이 뭐냐면 회의 때 가끔 얼굴을 붉힌다, 내 의견을 강하게 말한다 이런 것들인데 그 점수를 상사나 아래 직원이나 다 낮게 준 거죠. 너무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날 교수님께서 전체적 설명을 해주시는데 저희 13기 기수 30명이 대부분 정서적 원숙함 점수가 제일 낮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게 한국사회에서 중간간부급으로 성장한 여성들의 특징이래요. 업무는 아주 잘하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들 지금까지 학교에서도 공부 잘했고 칭찬받고 그랬는데 남자들과 경쟁하면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지금도 ‘정서적 원숙함’이라는 6음절을 기억하잖아요. 되게 충격이었고, 교육받고 2년 지났는데 지금도 힘들어요. 그 자리에서 표출하지 말고 두었다가 말한다든지 이런 조언도 받았는데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달라요.

남녀 관리자들에게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건 어디에 원인이 있다고 보나요?

타고 나는 것도 있고 교육의 영향도 있겠죠. 자라면서 부모나 주위에서 듣는 얘기도 있고, 군대생활도 있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남자들은 후배를 끌어들여 어떻게 키우겠다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렇게 동질화 되고, 그러면서 그들만의 세계를 탄탄히 하죠. 그리고 평소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면 따르는 남자 직원들이 술 한 잔 마시면 그런 얘기를 해요. “나는 뭐 의견이 없겠냐, 나는 가장이잖아” 이런 얘기. 여자보다 절실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부분들이 복합적으로 남자들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해요,

남자들의 대물림이 이뤄지는데 비해 여자들은 어떤가요?

남자들은 무리문화가 잘 구축되는 게 군대 등 어디서나 위계질서가 확실해서 그런데 여자들은 위계보다 평등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뭔가 단단한 거 만들려고 굳이 하지 않는 면도 있고요. 여자들은 수적으로 적고 그런 구조가 없는 것도 있죠. 그래서 WIN이나 이화리더십개발원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조직 내에서 같은 미션을 갖고 일하는 여자구성원들 사이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조직이면 좋겠죠. 저희 회사에도 여직원들은 많지만 아직까지 주니어세대가 두텁고, 이런 일들을 하려면 위가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적어요. 하지만 여건이 안된다면 외부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더 좋을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회사마다 이런 필요성을 느끼는 여자 간부나 중간관리자들 몇 명이 하기에는 한계도 있고요. 그래서 이런 곳이 더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2. 즐겁게, 의미있게 살고 싶다

선배들의 경우 임원을 목표로 삼은 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구체적 목표가 있나요?

전략을 짜는 것이 제 일이다 보니 저는 조직의 올해 미션을 비롯해 3년 뒤, 5년 뒤 가야 할 방향을 늘 생각해요. 하지만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제가 아직 때가 안된 건지 자질이 부족한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임원이 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조직 내에서 가기 위해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업무적으로 그런 생각만 합니다. 팀장이나 임원이 된다면 그건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요. 조직 내에서 제 열정의 심지에 불꽃을 붙여주는 건 연봉이나 임원 승진은 아닌 것 같고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해야 하고,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는지가 제 모티브가 되죠. 제 삶도 뭐가 되야겠다가 아니라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이래야 즐겁고 행복해요. 조직에는 항상 기여해야 하고 내 일이 즐거워야 하고, 존재감이 있어야 하고, 사이드로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겠고 그게 총체적으로 저의 불씨였던 것 같아요.

이런 점이 조직에서 남과 여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생각은 임원급인데 임원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군요.

제 생각에 조직을 굴러가게 하는데 있어서는 경험이 필요한데 그건 임원의 역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거든요. 저희 회사는 그래서 마스터 제도를 만들어서 팀장이나 임원의 길 외에 전문가로서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조직을 이끌 카리스마나 리더십은 좀 부족하지만 일을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전문가도 회사로서는 필요하죠. 이런 길이 열린다면 앞으로는 임원 승진 외에도 전문가로서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까지 좀 더 시각을 달리 봐야 하지 않나 싶네요.

WIN에서 만난 인상적인 멘토가 있나요?

제가 이쪽으로 관심이 있다 보니 처음 멘토 신청할 때 문효은 대표님을 만나게 됐는데 많이 격려해주셨어요. 대표님께서 정말 좋아하시면서 “영리에 있던 사람들의 자질과 경험이 비영리에서 도움이 된다”고 격려도 많이 해주셨죠. 또 언젠가 컨퍼런스에서 이영숙 대표님께서 “커리어 패스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리플렉션 하라”고 강의하셨는데 그때 제가 하는 일은 상업적인 일이지만 제 경험 등으로 봤을 때 뭔가 접목하고 싶은 내면의 갈등 같은 게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나서 너무 좋았어요. 그날 커피를 마시며 대표님께 제 생각을 말씀 드렸더니 정말 좋다면서 격려해주시더군요. 또 올 봄에 상을 받으러 갔을 때는 IBM의 한정아 상무님께서 먼저 다가와 건강을 염려해주셔서 일부러 상무님 테이블에 앉았어요. 여자들은 만났을 때 촉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 이번에는 저 분을 멘토로 하고 싶다는 그런 촉’요. 이후에 한 상무님하고 점심 데이트도 했는데 역시 제 촉이 맞더라구요 !

앞으로의 꿈은 무엇입니까?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세우고 준비하다 보면 때가 되면 기회가 다가온다고 봐요. 사실 저는 굉장히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도 했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경험도 했고. 특히 사회적인 소셜굿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저의 이런 경험이 더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곳을 찾고 싶고 공공의 이익과 제 경영학적 경험과 지식이 접목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조직이냐 어떤 포지션이냐 까지는 고민 안했는데 그것이 제가 갈 방향이라는 확신은 있어요.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서 제가 디딜 땅도 넓게 보고 있죠.
저는 회사일도 재밌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고 있어서 행복해요. 제가 대학 때는 학교 방송국에서 취재하면서 다양한 사회를 봤고 MBA를 마친 뒤 1년은 글라스고에서 홈리스와 약물중독자들을 위해 봉사한 경험이 있어요. 요즘은 라파엘 클리닉이라고 병원에 가기 어려운 동남아의 근로자들을 치료해주는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이 많고, 특히 경영학적 개념을 도입해 효과적으로 돕는데 관심이 가요. 그냥 돈을 주는 기부가 아니라 사회의 일꾼이 되게 효과적으로 돕는 거죠.

선배들에게 힘을 얻고 있는데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꼭 이 얘기 하고 싶은데 남들이 얘기하는 커리어패스나 이게 정석이다 라는 것을 보기 이전에 나 자신을 보고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내게 어울리는 조직을 찾는 일을 먼저 하기 바랍니다. 그냥 남들이 좋아하는 대기업을 가겠다고 하지 말고요. 나를 돌아본다는 게, 우리나라 교육이나 상황에서 힘들지만, 불씨가 타오르는 석탄이 되게 하려면 그건 대기업 배지나 통장잔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 조직에 있을 때 더 많이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시야를 넓혀서 도전하세요. 시야를 내가 있는 곳, 내가 아는 곳으로 한정하지 말고 넓히다 보면 내가 몰랐던, 내가 원하는 게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