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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허금주가 가면 길이 된다

허금주 / 교보생명 상무


1. 첫 여성 대리, 첫 여성 과장. 처음과 함께하다

교보생명에서 여직원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첫 여성 임원으로서 이룬 성과가 궁금합니다.

저는 1990년 교보생명에 입사해 첫 여성대리, 첫 여성과장 그리고 첫 여성임원이 됐는데요. 특히 남성의 고유 영역인 비서실장, 해외 주재원 그리고 B2B 마케팅에도 도전하고,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조직을 이끈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직무를 맡았을 때 마다 시장에 영향을 줄만한 성과를 창출해 회사에 기여했던 것 같습니다.저는 2000년 교보생명 국제업무팀장으로 해외진출 업무를 기획하였고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2004부터 중국 북경주재소장으로 근무하다 2009년 본사 퇴직연금사업본부 컨설팅 부서의 부장으로 복귀했는데요. 이때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이 퇴직연금의 도입을 위한 준비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였어요. 교보생명이 전통적으로 B2B 마케팅에 강했지만 대기업들이 계열 금융사에 퇴직연금을 몰아주면서 교보생명으로서는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우면서 선진 인프라와 인력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해야 했습니다. 제가 퇴직연금 사업본부의 컨설턴트로 발령을 받았을 때 맡은 과업은 해외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외국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퇴직연금에 대해 불철주야 공부하면서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동시에 영업에 나서야 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글로벌기업 스와로브스키의 퇴직연금 컨설팅과 함께 유치에 성공했고 회사에서는 글로벌기업을 전담하는 사업부를 별도로 만들어 제가 이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180개 퇴직연금기업, 140개 단체보험 가입을 유치했고 300개 이상 기업 고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 일을 하겠다고 손을 듭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일이었는데 손을 들었군요.

저는 항상 회사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기회가 보이면 손을 들고 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중국도 제가 기획해 손들고 나갔고요. (제가) 중국으로 발령을 받자 많은 사람들은 본사의 팀장 자리를 두고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의아해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보면 저는 ‘바닥에 떨어졌다’는 표현을 쓰는데 떨어졌다 올라갔다. 떨어졌다 올라갔다 “사이클”을 탔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항상 긴 사이클로 생각을 해왔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사실은 다시 바닥에 떨어졌어요. 컨설턴트라는 부장 직급으로 혼자 일할 때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지식 습득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스와로브스키 등 글로벌기업들을 고객사로 유치하면서 사업부까지 생겨 지금은 글로벌기업에 대한 퇴직연금의 도입, 유지,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좀 더 편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섰나요?

저는 항상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도전”을 즐기고 그 과정에서 제가 성장을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성장을 멈추면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2009년까지 본사(조직)에 주로 있었고 현장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커리어 트랙을 봤을 때 회사경영에 대한 제한된 안목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인사팀에서 해준 조언이었어요. ‘본사(조직)에 오래 있었는데 앞으로 스텝 업 하려면 현장의 경험이 좀 필요하다,’ 저도 거기에 수긍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라고 하면 회사를 나가라는 건가 싶어 머리가 복잡해 집니다. 그런데 처음 해본 일을 멋지게 해냈군요.

굉장히 힘들게 했습니다만 잘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정말 성심 성의껏 했습니다. 그 무렵 2009년에서 2011년까지 3년 동안은 평균 13시간~15시간씩 근무했어요. 엄청나게 일한 거죠.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왔습니다. 시댁에서 살았던 데다 이미 애들이 컸고, 교육부분은 남편이 많이 도와주는 등 가족들의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늘 저를 도와준 가족과 주변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직원들도 잘 따라주었나 봅니다. 비결이 있었나요?

저는 솔선수범 스타일이라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제가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주로 비딩을 위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밤을 새웠는데요. 교보생명이 사업자로 많이 선정된 것은 그만큼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회사에)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각 회사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했습니다. 회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창업주에 대한 스토리부터 시작해 회사의 역사, 어떤 상품이 있는지, 교보생명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왜 교보생명이 이런 문화와 강점을 갖고 있고 이런 상품을 제공하는 회사에 사업자로 적합한지 등을 스터디하다 보면 밤을 새울 수밖에 없어요. 그 일을 여럿이 앉아 정말 열정적으로 일했어요. 토론하고 자료에 그래픽이며 애니메이션도 넣어가며 차별화 시켰죠. 그렇게 준비하다 보니 계속 사업자 선정이 되면서 선순환이 된 거예요. 하루에 두세 번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도 했는데 똑 같은 자료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표정이 상기되는 걸 보니 그때 참 행복하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직원들이나 임원들이 저는 일할 때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해요. 일을 “즐긴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자료 준비가 끝나면 밤새 연습했습니다. 가급적 담당자가 오너십을 갖도록 직접 발표하게 했는데 “톤은 낮추고, 눈빛은 이쪽으로, 타이밍은 이렇게” 하나하나 챙겼어요. 한번은 밤새 연습한 과장이 다음날 아침 눈은 빨갛게 충혈되고 목이 쉬어 걱정했는데 그 기업에서 저희를 선정했죠. “저 친구가 평소 방문을 하였을 때에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정말 강력한 의지가 보이더라, 사업자로 선정 안 하면 큰일나겠다” 면서요. 이런 방법으로 직원들을 교육시켰고 역량이 강화 되다 보니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생겼고 경쟁사에 직원들을 뺏기기도 했어요. 교보생명 퇴직연금사업본부가 퇴직연금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아카데미가 된 거죠. 사업부가 생기면서 상무보로 승진하고 3년 뒤인 올해 4월에 상무가 됐습니다.

현재 교보생명에 여자 임원이 몇 분인가요?

현재 여자 상무가 두 명이에요. 저는 B2B를 담당하고 있고 다른 여성분은 B2C, 즉 개인영업 부문에서 재무설계사 출발해 영업관리자로 탁월한 영업성과를 창출하셨습니다.

교보생명 최초의 여성 대리-과장에 이어 임원이 됐습니다. 임원이 되고 나니 뭐가 다르던가요?

“저는 항상 제 자리에서 제 일을 열심히 합니다”라고 얘기했는데 이제는 더 넓은 관점에서 회사의 여러 가지 상황을 알고 거기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 부분이 더 크더군요. 그 동안 참 많이 부족했구나 라고 느끼기도 했고요. 영업/마케팅을 하다 보면 거의 외부고객에 집중 하게 됩니다. 제 모든 실적과 성과가 거기서 나오니까요. 그러다 보니 회사 내의 상황에 대해 조금 체감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 않았던 것 같아서 좀 더 회사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직원들과 공유하며 한 방향 정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구나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느꼈다기 보다는 어떤 임원분이 말씀하셨어요. “허금주씨는 회사 임원들하고 교류를 많이 안 하는 것 같다”고. “저 교류 많이 하는데요”라고 해놓고 생각해보니 제 교류의 100중에 한 90퍼센트 정도는 외부고객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던 거죠. 임원이 되면 회사 내부적인 상황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내부 임원들과도 교류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합니다. 다행히 옆에서 조언해주는 분들이 계셔서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 리더십과 코칭, 배우고 노력했다

임원이 되고 나면 피플 매니지먼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토로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본사(조직)에 있을 때의 리더십과 현장에 나와서의 리더십이 또 다르더군요. B2B 담당 사원은 직접 회사를 방문해 마케팅 활동을 하는 만큼 제가 이들에게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회사에 대한 로열티 그리고 동기부여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기업과의 프로젝트에서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상처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 그리고 조직을 성장 시키기 위해 리더십에 대한 훈련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강대 국제학대학원의 마스터 코칭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작년부터 코칭 리더십으로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고 나름대로 제 리더십 스타일을 제가 정의했습니다. 그때 배운 툴을 활용해 모든 조직원과 코칭 대화를 하고 사람의 심리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고 필요한 사람에 대해서는 1:1일 코칭을 진행 합니다.

이론을 실전에 활용하고 있군요. 코칭을 본격화 해보니 어떻던가요?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코칭이란 많은 시간과 인내력을 필요로 하고, 저희의 실적은 바로 바로 숫자로 나와 성과로 보여져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므로 대화를 나눌 때는 사원이 스스로 자기 성찰을 통해 문제를 찾게끔 하고 저는 질문을 통해 그 문제에 대해 솔루션을 찾아가고 마지막에 액션 플랜을 어떻게 같이 공유할지, 어떻게 확인하는 절차를 가질지 함께 고민을 합니다.

사내에도 리더십이나 코칭 프로그램이 많은가요?

상무(임원)보일 때 회사에서는 연간 교육 계획을 월단위 기획하여 교육을 받도록 합니다. MBA 과정에서 해야 할 모든 것, 리더십 교육, 액션러닝, 식스시그마, 변화관리 등의 심화교육을 받습니다. ‘보’는 정식 임원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많은 테스트를 받습니다. 한겨울에 홍대 앞에 나가 미국의 TV 프로그램 “Apprentice”와 같이 붕어빵을 팔아본 적도 있습니다. 하루 24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여 쓰기도 힘든 상황에서 수많은 교육 받다 보니 직원들이 저를 보면 안쓰러워하고 응원도 많이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배운 코칭이 통하지 않는 직원도 있지 않나요? 그런 직원은 어떻게 합니까?

코칭은 액션플랜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확인 관리하는, 타인 매니지먼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코칭 기술이 뛰어나면 반드시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게 돼 있습니다, 저는 한번 맺은 인연은 절대 저버리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코칭을 배운 뒤 사내에 “KWICK [Kyobo Women’s Innovative Council in Korea]” 라는 우먼카운실을 발족하여 멘토링 프로그램, 우먼 컨퍼런스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주 활동은 관리자들에게 멘토링에 대한 교육을 제공하고 그 관리자들이 사원급들에게 선배로써 그룹 멘토링을 하게끔 하는 것 입니다. 금년에는 KWICK을 기반으로 차세대를 위한 'KING [Kyobo’s Innovative Next Generation]'을 시작하였습니다.

영업, 마케팅 업무도 바쁠 텐데 코칭이 매력 있었나요?

네, 의미 있습니다. 조직원들에게는 성과 목표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데 특히 영업, 마케팅 분야는 동기부여가 매우 중요합니다. 개개인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지, 저 친구를 위해 뭘 해줘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가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계속 배우고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다 성과 창출로 가는 중간과정이기도합니다. 결국 조직은 성과를 내는 것이 의무이니까요. 또 이왕 하는 일이면 조직원들이 행복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입니다. 저는 늘 저희 조직원에게 우리의 키워드는 '행복'이라고 말 합니다. 신입사원들도 제 집무실에 들어와 커피 한잔 마시며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자유롭고 열린 분위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거죠.

길을 열어준 선배로서 뿌듯하기도 하겠지만 부담도 크겠습니다.

네, 후배들에게 비전을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습니다. 저는 여직원들한테 그렇게 얘기해요. “나는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적어도 상무까지 올라올 수 있는 길은 열어드렸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오면 좋겠다.”고, 그래서 여성 중간간부들에게 코칭도 많이 하고 경력단절이 되지 않도록 여러모로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대리, 과장들은 가장 일을 많이 해야 할 시기에 육아의 문제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성 직원의 아이 돌보는 도우미가 그만두면 며칠 회사에 못나와 슬퍼하고, 자기가 생각해놓은 미래의 모습이 깨질까봐 불안해하죠. 저는 그러 상황에서는 충분히 휴가를 사용하게 해주고, 출산하면 체력이 완벽 하게 회복되도록 쉬게 합니다. 적어도 여성의 적이 여성이 되면 안되잖아요.

임원이 된 상무님만의 결정적인 장점이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회사에서는 추진력과 창의력이라고 정의하여 주었습니다. 제가 영업, 마케팅 부서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이죠. 제가 사용한 여러 가지 사업자 선정 과정 방법 그리고 마케팅 툴이 창의적이었다고 회사에서 평가했습니다. 조직원들은 제 열정과 긍정적인 면을 인정해줍니다. 저 스스로는 네트워킹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합니다. 90년도부터 많은 대외 활동을 해왔었습니다.

일찍부터 대외활동에 나섰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제게 멘토가 있습니다. 미국 월가의 여성 CEO인 릴리아 C. 클레멘트이라는 분입니다. 저에게는 많은 영감을 주었고 주기적으로 저에게 많은 책을 선물해 주면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네트워킹과 PR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제 스스로 Personal Branding을 하여 언론 매체에 저의 존재감을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미국에서 자산운용회사를 운영하는 동양 여성 CEO이십니다. 월가에서는 가장 성공한 동양인이기도 합니다. 이 분이 1988년에 한국 뮤츄얼펀드를 뉴욕증시에 상장할 때 함께 일을 하면서 인연이 됐습니다. 1990년에 제게 본인의 스토리가 담긴 ‘Wall Street Women’이라는 책을 주면서 ‘우리는 더 좋은 코리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 그리고 이 책은 아주 스페셜한 너한테 주는 거다.’ 라고적고 네트워킹을 많이 해라, 너 자신을 프로모션하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이후로도 몇 년에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책을 한 권씩 주셨는데 그 때 주신 책들이 제 상황에 딱 맞는 책들이었어요. ‘Art of Imperfection’ 이 책은 지난해 선물하셨는데 “금주, 바로 너야, 이게 너의 문제야. 너무 완벽을추구하지마”라고 써주셨어요. 제 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주신 분입니다.

훌륭한 멘토를 만났군요. 그래도 남성 중심 조직에서 여성 임원이 되기까지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20년 넘게 회사를 다니고 40이 넘다 보니 이제 회사에서는 저를 동료로 생각을 하지 여자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남성 동료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남자처럼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대리 때는 남자처럼 무채색 바지정장을 입고 목소리도 일부러 톤을 낮춰 여성성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일 사실입니다. 그때는 그게 정답인줄 알았습니다. 그때 들인 습관 중 하나가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거예요. 당시에는 이 사람들이 나보다 빨리 승진해 내 상사가 될 것 같았고 그래서 나중에 불편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을 텐데 한 직장을 쭉 다니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 개인의 목표와 회사의 목표가 일치를 하여 현재를 미래의 성공으로 연결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 비전을 공유하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교보생명의 비전경영, 윤리경영, 고객 만족경영, 열린경영과 나눔경영이 존경 받는 100년 기업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경영철학이고 이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 교보생명을 선택하였습니다. 교보생명은 저에게 많은 기회 그리고 꿈을 이루어지게 해준 곳 입니다. 스카우트 제안은 많이 받았습니만 모든 문제는 제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즉 외부의 환경이나 상황이 바뀐다고 해도 내 스스로 적응하고 만족하지 않으면 이직은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임원이 되기까지 직면했던 위기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를 꼽았습니다. 어떻게 이겨냈나요?

국내 대기업에 오래 다니면 직무도 순환되고 담당 상사도 바뀝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 있었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악보스도 보스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회사에서 그 조직장을 그 위치에 배치를 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지만 분명히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있으니 조직에서는 조직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 입니다. 아이러니컬하게 이런 상사를 만나서 가장 많은 내공을 쌓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지혜를 가르쳐줄 여자 상사도 없었는데 어떻게 배웠나요?

저는 영화 “광해” “미녀는 괴로워”의 제작자인 남편이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들에 대해서는 대부분은 남편한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돼?”,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회식자리에서는?” 등등에 대한 부분, 리더로서가져야 할 역량에 대해 남편에게 컨설팅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신입시절에 꿈이 대리였는데 어떻게 보면 친정 아버지와 남편이 밀고 끌어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외교관이셨던 아버지는 주말이면 저를 대사관에 데리고 가 타이핑도 시키고, 신문 스크랩도 시키면서 “너는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이 돼야 한다”는 마인드 세팅을 해주셨고 남편은 제가 신입사원 시절부터 “당신은임원이 될 수 있다”며 비전을 주었어요. 아버지가 씨앗을 뿌려주고 남편은 물을 주어 키워준 셈입니다.

남편과 시댁의 움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아이들 문제로 고민한 기억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중국 북경주재소장으로 근무할 때에 두 아들을 데리고 나가 싱글맘의 삶을 살았습니다. 아이들은 외국인학교를 다녔고 방과후에는 집안의 도우미들이 아이들을 돌봐주던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학교에 불려갔는데 선생님이 “엄마가 일이 힘드십니까?” 물어보더군요. 엄마의 정신적 상황이 아이에게 반영이 된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 아이의 머리가 부분적으로 빠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원인이 무엇인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애정결핍”의 현상으로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뽑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중국에서 프로젝트를 하느라 매일 밤 12시에 집에 가서 아이들 얼굴 보고 나오고 그랬는데 아이는 애정 결핍이 된 거죠. 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관련 서적 그리고 카운셀러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더 많이 안아주고 그렇게 6개월 노력했더니 머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굉장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두 아들들을 아이스하키 시키면서 주말마다 아이스링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경기에 참여하면서 함께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강하고 독립적으로 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요즘은 학교 학부형들 중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스마트하다”고 할 때 세상에서 받은 칭찬 중에서 저를 가장행복하게 합니다.

자녀들에게 강조한 원칙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 항상 한가지 가치(value)는 지키라고 반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합니다. 인생에서 비전은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 그리고 너희들의 핵심 가치는 반드시 “정직과 성실(integrity)이 돼야 한다는 것 입니다. 어떤 의사결정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이것이 나의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엄마에게는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질문하죠. “엄마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뭐지?” 아이들도 알고 있습니다.

‘제2의 허금주’를 꿈꾸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셀프 매니지먼트, 자기관리. 둘째, 협상 기술, 셋째 네트워크 관리 입니다. 셀프 매니지먼트는 스스로 성공의 의미를 정해야 합니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게 성공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지 않으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감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본인의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자신의 목표와 속도를 조정하고 긴 안목으로 직장 생활을 하라는의미입니다. 두 번째로는 협상 기술을 개발해서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즉 회사와 상사도 선택하고, 기회에 도전을 하되 남성의 언어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공격적으로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네트워크 관리는 어느 조직에서든 성과를 내고 존재감을 갖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