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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늦은 출발은 없다.

장승희 / 신한관세법인 대표이사


1. 마흔에 시작한 공부, 그리고 찾은 나의 일

가정을 돌보다가 40대에 처음 일을 시작했습니다. 보기 드문 이력입니다.

남편이 미국에서 교수 생활을 해 15년쯤 미국에 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회계학 석사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신한관세법인 창립자이신데 혼자 하시기 힘드시다면서 관세사 공부를 추천하시길래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관세사가 됐어요.

시험 공부는 할 만 했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았어요, 하하. 관세사 시험은 1차 객관식 시험, 2차 주관식 시험으로 나뉘는데 2차 주관식시험에서 HS코드(품목분류번호)를 외우는 일이 특히 어렵습니다. 책이 이만큼 두꺼운데 글씨는 깨알 같아요. 1차는 금방 붙었는데 2차 시험은 여러 번 떨어졌어요. 나이 들어 공부하니 힘들더라고요. 하긴, 42세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웃음). 처음에는 공부하는데 머릿속에서 세포가 펑펑펑 터지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요만했던 뇌세포에 억지로 이걸 끼워넣으니까 그랬나 봐요. 시험을 볼 때도 젊은 친구들은 문제를 보자마자 답을 써내려 가는데 저는 생각하고 쓰고 생각하고 쓰고 하다보니 늦더라고요. 세번쯤 떨어지니까 남편은 “굳이 관세사가 돼야 하나, 그냥 도와드릴 수 있지 않느냐”고 말렸고 아버지는 “한번만 더 봐라”고 하셨는데 붙었습니다. 그때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는데 남편이 많이 도와주었어요.

관세사 시험을 통과한 후 어떤 일부터 했습니까?

회사에서 인천공항에 지사를 냈는데 거기서 2년쯤 일했습니다. 상무로 처음 발령이 났는데 그때 밑바닥 일부터 다 하면서 실무를 배웠어요. 창고에 가서 물품을 열고, 식품류의 경우 식약처에서 나오면 검역을 받고, 부산에 배가 들어오면 어떻게 서울로 운송할지 정리도 하구요. 그 2년 동안 실무를 해본 경험으로 지금까지 아는 척하고 있습니다. 하하.

대표를 맡아 어깨가 무거웠겠습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 나갔나요?

처음에는 지인들 중에 기업 임원을 찾아가 “관세사가 됐으니 도와달라”며 영업을 했는데 참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차별화를 고민하게 됐고 무역 거래 컨설팅 본부를 만들어서 젊은 관세사들을 영입해 회사를 키웠습니다. 2005년 무렵만 해도 관세사 시험에 통과해도 갈 데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이렇게 똑똑한 친구들이 어깨 펴고 일할 직장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관세사의 영역을 넓혀 이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큰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이렇게 커질 수 없었고 조금 늦었어도 못했을 거예요. FTA 준비도 다른 회사보다 일찍 시작했고요. 관세사 두 명이 계속 연구했는데 일종의 투자였죠. 작은 법인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회사를 운영, 유지하기도 어려운데 규모를 키워놓았으니 감춰진 능력이 있었나 봅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어떤 점이 뿌듯한가요?

보세창고에서 일하는 물품 관리 직원 중 한 명이 얼마 전 부친상을 당해 조문을 갔습니다. 그 어머니께서 경황이 없는 가운데에도 저를 쫓아 나와 “우리 막내아들 사장님이냐”면서 “우리 아들 잘 봐달라”고 당부하시더군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아 내가 책임이 참 크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어려운 점도 있을 텐데요.

멀리 보고 넓게 보는 면에서 아직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또 제가 경제 개념이 좀 약해요. 회사가 발전하려면 사실 수익도 많이 나야 하는데 매출이 느는 만큼 또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뒤늦게 사회로 나왔는데 겁은 나지 않았습니까?

제가 뭘 하든 겁이 없어요. 실수도 있겠지만 일단 해보고, 지르고 보는 성격입니다. 그리고 기존 업무를 이어받았다면 오히려 어려웠을지 모르겠는데 공항 지사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서 직원들이랑 의논하며 만들어 나가다 보니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쌓인 지혜도 있었고, 열정과 노력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우려먹으며 한 5년 하다 보니 점점 부족해지는 것 같아 MBA를 하러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공부가 제일 쉬웠나 봅니다.

제가 웅덩이 물처럼 고여지는 것 같더군요. 한번 휘저어 놓을 필요가 있어서 갔는데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직장 경력 10년 이상만 올 수 있었는데 각 분야에서 능력 있는 분들이 많이 왔어요. 교수님이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실무적인 얘기를 더해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은 다음날이면 다 잊어버렸지만 들으면서 도움이 되겠다 싶은 실무적인 내용은 열심히 메모해두었다가 써먹었습니다. 이때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내가 배웠는데 이렇더라”고 직원들에게 팁을 주며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관련해 어떤 포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후년이 회사 창립 50주년 입니다. 한국에도 100년, 200년 가는 중소기업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틀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창립자가 있고 저, 그리고 다음 전문경영인으로 넘어가는 중간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또한 최근 통관업무가 전산화되면서 간단해짐에 따라 컨설팅 영역을 확장해 고객 감동 서비스로 기업이 먼저 찾아오는 회사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입니다.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직원들과 함께 해야 가능하겠지요. 직원들이 행복해야 고객들한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가 되야겠다고 얘기합니다. 저 스스로도 잊지 않도록 리마인드 시키고요.

어떻게 하면 직원이 행복해 하나요?

올해 초 워크숍 때 “행복 두 배”가 목표라고 했습니다. 행복 두 배가 뭘까요. 돈, 급여만이 행복은 아니지 않을까요? 서로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급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직원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려고 하죠. 권위주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저는 친구같이 다가가려고 합니다. 임원들과는 매일 티타임을 갖고 소소한 얘기부터 일 얘기 등을 나눕니다. 그래서인지 엄마 같다고 하는 관세사들도 있습니다. 어떤 지인은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고 하던데 원래 성품이라 바꿀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대표님에게 40대에 시작한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은 제 생활을 두 배로 폭넓게 해주었습니다. 혈연의 가족 외에 일의 가족을 더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자신감도 생기게 해줬으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2. 엄마 같은 리더, 믿고 기다려준다

대표와 직원들 사이에는 거리가 있게 마련인데요. 직원들과 어떤 식으로 소통 하나요?

제가 위로는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도 직원들과는 가능한 한 많이 얘기를 나눕니다. 어떤 때는 “내 아그들”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은 바로바로 “내가 잘못 생각했네” 하고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직원들도 스스럼 없이 말해 주고요. 전에는 회식도 많이 했고 요즘은 한가할 때 두 세 명씩 불러서 얘기를 나눕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는 밥은 먹었냐, 이사 가는 집은 어떠냐 등 소소한 사적인 질문을 합니다. 직원 생일에는 함께 케이크를 먹기도 해요. 그리고 저는 야단 치는 대신 기다려 주는 편입니다. 작년에 한 친구가 맨날 외근 나간다고 하고 안 보이고 좀 농땡이를 부리더군요. 야단을 치는 대신 “뭐하냐”고만 묻고 기다려 주었더 돌아오더라고요. 지금은 뭘 하면 “저는 언제나 사장님 편입니다” 그래요, 하하.

어떤 리더라고 생각합니까. 흔히 여성 리더를 일컫는 ‘외유내강’ 형 인가요?

반대예요. 전 겉으로는 강한 거 같은데 속으로 약하거든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고 해야겠다 싶은 건 외부의 높은 사람에게도 눈치 안보고 강하게 하는 편입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앞뒤가 안 가려지는 스타일이에요. 오히려 내부적으로 직원들에게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부드럽게 합니다. 명확하게는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약한 편입니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떻게 보충하나요?

학교 다닌 것도 도움이 많이 되고 다양한 외부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그때부터 서 있던 톱니바퀴가 착착 움직이듯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느껴지고 아이디어도 떠올라요. 최근 읽은 책 중에는 강진으로 유배 간 정약용이 그곳에서 소년 황상을 제자로 만나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은 ‘삶을 바꾼 만남’과 김아중 전 중국대사의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이 기억에 남습니다. 문제는 책 읽을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지요.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려 하면 5분도 안 걸려 잠이 들거든요. 하하

리더로서 대외 네트워킹을 의식적으로 하는 편인가요?

네. 주한유럽상공회의소나 주한미국상공회의소에도 나가고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FTA 국내 대책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MBA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번개를 하기도 하고요. 좋은 점이 제가 나이가 많다보니 다들 “누님”이라며 언제든 예스 하고 와줘요. 직원들도 제가 회사를 외부에 많이 노출시키고, 알려주기를 바랍니다. 저희 회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이메일로 소식지를 만들어 고객과 지인들에게 보내는데 그것도 그 일환입니다. 제가 글을 나씩 쓰는데 제가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서성거리면 가족들이 “또 마감할 때냐”며 웃습니다.

여성 리더로서 대외활동에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모임에서 홍일점인 경우가 많다보니 쉽게 눈에 띄고 오래 기억에 남는 게 장점이겠지요. 동전의 양면처럼 제가 잘 하고 못한 일이 금세 들어가기도 합니다. 남자들끼리의 세계가 많은 것도 쉽지 않고요. 처음 3~4년은 저녁을 먹고 그 다음 술자리에 이어 노래방까지 끝까지 따라갔어요. 지방 가서 술 마시고 차 타고 오면서 계속 토한 기억도 있고요. 그때만 해도 데리고 있는 관세사들이 젊어서 그 친구들을 내보낼 수 없었고 대표가 나와야지 젊은 관세사들 내보내면 그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 안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자 대표가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좋은 인상도 심어진 것 같고 그렇게까지 해서 영업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직원들은 “나가서 골프도 치고 그러시라”고 하는데 골프도 접대로는 안 칩니다.

이런 시간을 겪어본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남자들의 세계에 끼어들어보라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두 타입 아닌가요. 야망이 있는 타입이 있고, 그냥 월급 받으며 편안하게 가정을 유지하고 싶은 타입도 있고. 이왕 할 거라면… 젊은 친구들 만나면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40대 중반까지는 죽을 힘을 다해서 해봐라. 그리고 나서 그때까지 쌓인 거 갖고 그후에 우려먹으며 살아야지 40이 넘었는데 나한테 아무것도 없다면 문제가 있다”고요. 저야 굉장히 운이 좋아 갈 데가 있고 할 일이 있었으니 관세사 시험도 봤지 무작정 하기는 힘들었겠죠. 아들한테도 말합니다. “40 이전에는 우직하게 실력을 쌓고, 사람들 많이 만나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놓아야 40이 넘어 뭔가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앞으로 여성 리더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할텐데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글쎄, 외부는 잘 모르겠고 여성 관세사들을 보면 아직 사회가 남성중심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좀 부족해요. 나댄다고 할까봐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기 주장도 확실히 하고 그러면 좋겠습니다. 특히 여자들끼리 수군거리지 말고 똑똑한 여성 밀어주고 힘이 돼 줬으면 합니다. 남자들도 그렇지만 여자도 다 앞서갈 수는 없으니까요.

회사 일을 하면서 생활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좀 어려웠습니다. 둘째인 딸이 아팠던 것도 그런 이유도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한참 자랄 때 엄마가 공부한다, 회사 다닌다고 집에 없었으니까요. 어떤 엄마든지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그런 자책감은 있겠죠. 그래도 남편이 크게 불만이 없었고 특히 지금은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미국에서 가끔 오시면 제가 시험공부 한다고 잘 모시지 못하는데도 “네가 잘하는 거다.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이 아이들한테 진짜 교육”이라며 응원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밖에 나와 일을 하니 어땠습니까.

재미 있었어요. 나와 있으면 집안일은 다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묘한게 집에 가 있으면 회사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하하.

1남1녀를 키우며 특히 강조한 점이 있나요?

아이들에게 “너희는 다른 사람들보다 받은 게 많으니까 감사하면서 감사하는 만큼 행하라”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때까지는 굉장히 엄하게 키웠는데 대신 그 이후로 아이가 뭘 하든 믿어주었어요. 그렇게 놀면서도 공부는 좀 한다 했더니 아들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뭘 하든 엄마 아빠가 믿어주니까 어느 정도 되면 그 이상은 못하겠더라.”고, 또 하나는 스킨십을 통해 애정표현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 앞에서 남편과 포옹하고 뽀뽀하는 모습도 자연스레 보여줬고요.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은 사춘기를 겪은 줄도 모르게 지나갔습니다.

일 하랴, 아이 키우랴 바쁜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 부탁 드립니다.

1년에 할 수 있는 일은 과대평가 하고, 10년에 할 수 있는 일은 과소평가하는 습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연초에 목표를 거대하게 세우는데 이건 다 하기 힘든 반면 10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길게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일 힘든 게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는 문제일텐데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는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아이들을 사랑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언제든지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엄마, 아빠가 있어야 하니까요.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사회적으로 ‘은퇴 이후의 삶’이 화두입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전에는 쭉 일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오래 있으면 회사에 누가 될 것도 같네요, 하하. 저나 남편이나 돈을 벌어서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저는 정말 받은게 많은 것 같고 그래서 앞으로는 뭔가 줄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싶어요. 지금,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학교 일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