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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스텝 바이 스텝, 하나씩 이뤄가는 소소한 행복의 힘

조복희 / 한국전통음식연구소


1. 리더십,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임원을 경험해 보니 여자라서 좋은 점이 있던가요? 또 극복해야 할 점은 뭔가요?

여자라서 유리한 것도 있죠. 예를 들어 골프 치러가자 하면 남자들은 빠지면 왠지 개인플레이 하는 것 같지만 저는 골프 못 친다고 빠져도 그러려니 하니까 열외를 제 스스로 만들어도 되는 편리함도 있죠. 물론 어떻게 보면 이게 또 좋지 않을 수 있긴 해요. 그리고 저를 포함해 여자들이 실력으로만 인정받으려고 하는데 그게 문제가 되더라고요. 두루두루, 정치적인 네트워킹이랄까 정치랄까 그런 관계중심적인 부분까지 잘 해야 하는데 저는 너무 감정에 솔직하고 포커페이스가 안되어 잘 맞는 사람에게는 간 쓸개 빼놓고 잘해 주는데… 이렇게 보이지 않는 정치적인 부분에서 여자들이 불리하죠. 물론 요즘은 잘하는 분들도 많아요. 남자 이상으로 기가 막히게 잘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대체로 다른 점이, 사고 자체가 남자들은 일단 조직이 우선이고 여자들은 성과가 우선이에요. 남자들은 성과를 못내도 으쌰으쌰 하고 골프 치고 형님 동생하고 이러면 또 잘한 걸로 되기도 하니까요.

임원이 된 뒤 직면한 고민이나 위기의 순간이 있었나요?

리더십이나 관계상 문제도 있었지만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죠. 야심차게 만든 천연화장품이 상한 사고가 있었어요. 천연으로 만들다보니 천연 방부효과를 노렸는데 사전 검증을 충분히 했는데도 미진했던지 약간 이취가 나서 리콜하는 사태가 생겼어요. 그때가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면 일사불란하게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할까, 어디까지 제가 책임져야 하는 지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연구소가 더 철저하게 해야 했고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영업도 일부 역할을 다하지 못해 종합적 문제가 있었는데 궁극적으로 제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내가 다 책임진다고 하는 게 맞느냐, 아니면 변명할 수 있는 부분은 빠져 나가는 게 현명할까 복잡하더라고요. 그리고 표면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세력적 측면에서 불리해진다고 해야 하나, 경력관리상 약점이 될 수도 있고요. 성별을 떠나 임원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원이 되면 성과 창출에 대한 부담도 커질 텐데요.

그럼요. 끊임없는 도전과 리스크 테이킹과 성과창출이 되어야 하니까 어렵죠. 그런데 성과라는 것이 저나 제 부서의 노력만 갖고 되지 않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해야 된다는 것이 큰 본원적인 부담인 거죠. 오너의 원칙이나 그에 따른 회사의 시스템이나 정책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구조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이중성이 있어요. 그런 문제로 한계를 느꼈을 때 결정적으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원으로서 이룬 성과도 소개해주세요.

유니베라에서는 오너가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처음 왔다”고 하셨어요. 마케팅에 대해 전문지식이나 조직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제가 상사부터 밑의 직원까지 용어 하나하나 가르쳐가면서 마케팅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마케팅이 전무한 불모지에서 무엇이 마케팅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것이 보람 있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시스템이 돼 있으면 누가 들어와서도 돌아갈 수 있잖아요.
브랜드 통합 작업도 잘 됐습니다. 남양 알로에라는 사명은 알로에가 아닌 다른 소재로의 확장에 맞지 않아 사명을 유니베라로 바꾸면서 전체적인 글로벌 전략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제품 구조도 바꾸고, 화장품 신제품도 내고 2년 동안 죽어라 일했죠. 2004년에 옮겨 가서 2년간 그 작업을 다 하고 상무보로 진급했습니다. 과거 제가 대상에 있을 때 미원에서 청정원으로의 브랜드 전환 작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쉽게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떤 리더였나요?

약간 선생님 같은? 저는 어떤 과제나 미션이 있을 때 그냥 회사가 필요하니까 하자 보다, 회사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큰 그림부터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그려가면서 이 일을 하면 뭘 더 이뤄낼 수 있는지 이런 설득과정을 거치면서, 선생님이 차근차근 가르치듯 했습니다. 직원들이 저한테 배운 게 많다고 얘기해요. 제가 청정원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의 마케팅 실장님한테 스승처럼 많이 배웠듯이 저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여자이다 보니 누나 같고 학교 선배 같은 리더였던 것 같아요. 잘 상담해주고 얘기 많이 들어주고, 내 부서 후배들 잘 지켜주고. 그래서 지 새끼들만 챙긴다고 비난을 듣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런 걸로 팀원을 단단히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맞춰주듯 남녀 사원의 성별을 고려해 대했나요?

특별히 의식은 안했는데 굳이 구별한다면 남자들은 칭찬에 약하니까 “야 너밖에 없다”며 칭찬을 잘해주는 거죠. 본인의 장점을 얘기해주면서 굉장히 능력이 있다고 하면 열심히 해요. 저녁에 술도 한잔 사주고 이러면 되고. 여자들은 동등하게 수다 떠는 방법을 썼어요. 여자들은 약간 동질성, 이런 점이 동기부여에 도움이 돼요. 특히 애기 엄마들은 제가 결혼을 안 했어도 어머니 얘기 같이 들어주고 그런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선생님 같은 리더라고 했는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십의 덕목은 뭔가요?

저는 역지사지를 많이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경청해야 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 그런 판단을 했는지 충분히 들어봐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누구나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내가 옳다고 끝내버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적어도 정규 교육을 받고, 직장생활을 해왔다면 저보다 어려도, 그 사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가능성이 높죠. 다만 상황에 대한 이해가 달라 다른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니까요. 그 사람에게 부족한 부분을 이해시켜주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 생각은 반드시 잘 들어봐야 하죠. 특히 결국 회사의 방향이란 최고경영자의 방향에 따를 수밖에 없는데 100퍼센트 이해되려면 임원과 중간관리자들이 중간에서 잘 해줘야 해요. 경청이 굉장히 어려워요. 많이 아는 사람일수록 본인의 지식이나 정보가 더 맞다고 생각하고, 남의 얘기를 안 들어요. 선입관이나 지레짐작, 예단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임원이 된다고 리더십이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리더십이 그냥 얻어지지 않더라고요.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해요. 선배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이 바뀌려면 체계화된 공부가 필요한 것 같아요, 유니베라에서도 임원과 팀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었고 밖에서도 교육을 받았습니다. MBA 할 때도 그런 부분을 관심 있게 했고요. 사실 제일 중요한 건 관계잖아요. 일할 때 기쁘고 행복했다 불행했다 하는 것도 결국 관계에서 비롯되니까요. 타고난 훌륭한 리더도 있겠지만 리더십은 자기 훈련이고, 자기 성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저절로 얻어지기는 어렵다고 봐요. 스스로 자각하고 깨우칠 수도 있지만 계기가 스스로 안되면 외부 교육이라도 받아야죠.

리더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과제가 직원을 정리해야 할 때인데 그럴 때는 어떻게 했나요?

그게 제일 힘들죠, 제일 하기 싫고. 직원을 정리할 때는 팩트가 있지 않으면 어려워요. 평소에 그 사람을 잘 관찰해 두었다가 그 결과, 팩트를 중심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회사가 어렵고, 너는 어땠고 네 성향이 어때서 안 된다. 이렇게 얘기해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 혼자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판단도 들어봐야 해요. 당사자의 인생이 걸린 일인데 그래야 실수하지 않으니까요. 나보다 더 위에 있는 분이나 인사부서장, 그 사람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 등과도 얘기해 봐야죠. 왜냐면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한 공통 부분이 있거든요.

여성임원은 사내에서 ‘섬’처럼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임원들과의 네트워킹을 위해 노력이 필요한가요?

필요하죠. 다만 나를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문제가 있을 때나 어려울 때 같이 함께 해주면, 그 사람이 역으로 언젠가 도와줄 수도 있고, 내가 문제 있을 때 손을 내밀 수도 있고 한층 더 가까워지고 돈독해질 수 있잖아요. 또 하나는 일부러 했던 경우인데 지방의 계열 제조사 임원들이 자기들끼리 쌓인 앙금이 있어서 벽이 높은 거예요. 밥 한번 안 먹을 정도로. 그래서 제가 일부러 내려가 같이 밥도 먹고 그랬어요. 제가 끼면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그 시간에는 웃고 그랬죠. 더 오래 했으면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나왔는데 그래도 의미 있었어요. 그런 감정의 골이 있을 때 일부러 자리를 만들 필요가 있거든요. 제가 외부에서 왔지만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네트워킹이라는게 먼저 해서 나쁜 결과가 오는 것보다는 안했을 때 나쁜 결과가 더 올 수 있으니 어느 정도 노력은 해야 해요.

리더의 꿈을 키우는 후배들에게 신경을 쓰라고 하고 싶은 부분은 뭔가요?

제가 잘 못했던 부분이에요. 동료 임원들간에나 상사들, CEO와의 관계, 네트워킹이죠. 임원이 되면 본인이 이뤄내는 성과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윗사람의 신뢰거든요. 그걸 얻으려면 관계 형성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성과 위주로 온 사람들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그로 인해 수명이 단축되는 경우도 있어요. 네트워킹도 하나의 중요한 자기관리예요. 너무 나를 드러내지 말고, 감정보다는 좀 더 이성적으로 하고, 좋은 매너로 챙길 거 챙겨주고. 리더를 잘 하는 분들은 그런 걸 잘한 것 같아요.



2. 인생에는 단기적금의 소소한 행복도 필요하다

위와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아래 직원들과는 소통이 잘 됐을 것 같습니다.

저는 낙천적이라 화는 별로 내지 않았고요. 제가 마케터니까 조금 일을 재밌는 방식으로 해보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아이디어에 경품을 건다던가 개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편이에요. 그리고 제가 좀 허점이 있어서 편하게 해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좀 게으른 편이라 지시해놓고 잊어버리기도 하는데 어느새 뭘 만들어 왔다던가, 하하.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가 유지됐나요

직장생활 25년인데 재작년 말까지는 일 중심이었어요. 자투리 시간을 개인적으로 썼다면, 지난해와 올해는 조금 패턴을 바꿔서 일도 하지만 쉬는 시간도 많이 갖고 구상도 해요. 지금은 밸런스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또 일에 빠지면 24시간 매달리기도 할 것 같아요. 딱 나누기는 어렵지만, 어떤 때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고 쉬어가는 페이지도 있고, 날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맞추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뭔가 나다운 걸 계속해서 찾아가고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조복희’를 발견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발휘하고, 또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구상하고 있나요?

제가 올해 한국 나이로 50이거든요. 남들 하는 만큼 열심히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지 2라운드는 심사숙고해서 하려고요. 몇 가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 직장 동기와 함께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그 친구가 1호점을 냈고, 나도 같이 투자해서 2호점을 내고, 실제로 일하려면 바닥부터 해야 하니까요. 초창기에 잘 만들면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계속 생각해오던 작업인데 음식문화 콘텐츠에 대한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스토리텔링도 만들고. 그리고 요즘 정부가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마케터로서 재능기부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요즘은 다들 훌륭하게 잘하잖아요. 영어도 잘하고 정보력도 뛰어나고. 제가 당부하고 싶은 얘기는 내 것만 챙기지 말고, 가끔은 손해 보는 것도 하고, 같이 함께 하는 걸 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개개인으로 보면 다들 공주고 왕자고 훌륭해서, 지식도 풍부하고 잘하는데, 왠지 모래알 같다는 느낌? 결국 사람 일은 같이 하는 게 힘이 있지, 혼자 잘해서는 이뤄내기 쉽지 않거든요. 조직에 있는 사람이면 조직을 우선하고,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조직이 원하는 걸 우선해서 하면 좋겠어요. 요즘은 회식을 가도 어느 순간 다 휴대폰만 들고 있는데 저는 일부러 “얘기 좀 하자”그래요. 너무 개인화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거든요.

꿈을 크게 가지라고 조언해주고 싶은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꿈이 크면 좌절도 크지 않을까요. 왜 재테크를 할 때도 포트폴리오를 잘 짜라고 하잖아요. 장기플랜도 있어야 하지만 단기적금도 필요하죠. 조금씩 모아서 1년짜리, 2년짜리 작은 소소한 성과에 대한 만족이 크니까요. 돈 모으는 재미가 있으려면, 단기적금을 들어서 그걸 불리고 또 모아서 키우라고 하죠. 사회생활에서도 먼저 내가 할 수 있구나 이런 자신감을 얻고 그걸 바탕으로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는 거죠. 큰 꿈을 갖고 잘 이뤄놓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뭘 해야 하나요? 크게 성공한 사람이 오히려 우울증도 크게 오지 않을까요? 너무 큰 것 보다는 나한테 맞는 하나하나를 이뤄가는 소소한 행복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무엇이 되리라 너무 가지 말고, 자기 스스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직장에서 잘해서 성공하면 좋겠지만 아니라고 꼭 불행한 것도 아니고, 성공이 꼭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만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