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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변화의 리더십

오세임 / 전 우리투자증권 상무


1. 리더십은 상황에 맞게

임원의 자리까지 올라온 분들에게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순간이 있던데요. 상무님도 그런 기억이 있으세요?

제가 첫 직장인 국내 대기업에서 직급과 승진을 둘러싼 남녀차별을 경험하고 외국회사에 합격한 뒤 사표를 냈어요. 당시 과장님과 얘기를 나누는데 정작 왜 그만두는지, 어떤 불만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는 거예요. 그러더니 그때만 해도 대졸 여사원의 사직이 위로 보고가 됐는데 사직 이유를 ‘일신상의 이유’라며 괄호 안에 (결혼)이라고 쓰셨어요. 결혼 예정도 없었는데요. “봐라 여자를 뽑아놓으니까 이런 이유로 그만둔다” 이런 얘기들이 오갔겠죠. 이유는 묻지 않고 편하게 대응하는 조직의 모습을 보는 순간 뒤도 안보고 나왔습니다. 직장생활 30년인데 왜 어려움이 없었겠어요. 외국계에도 유리천장은 있어요. 그럼에도 항상 저를 다잡게 해준 것이 그때 그 8개월의 기억이에요. 좋은 의미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경험은 없다. 어떤 경험도 도움이 된다’는 교훈도 얻었고요.

8개월이면 아직 신입사원 때인데 어떤 남녀차별을 경험했습니까?

그 회사에서 160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여자가 6명이었어요. 당시 컴퓨터신사업 부서를 만들어 저를 뽑은 거예요. 그때는 4년제 대학에 컴퓨터공학과가 없다 보니 수학과가 방계라 뽑힌 것으로 이해해요. 한달 동안 오리엔티어링을 받고 6명의 여자 신입사원 중 저만 본사에 배치를 받게 됩니다. 부장님 아래로 차례대로 앉는 배치였는데 저는 대졸이라고 중간에 앉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공채가 아닌 남자직원이 오자 부장님이 자리를 빼주라고 하시길래 이유를 여쭤봤더니 부장님이 잠깐 생각하시더니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왔잖아” 이러시는 거예요. 군대를 가고 싶어서 간 것도 아닐 텐데 나름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런데 세상에 비밀이 없는 것이, 알고 보니 그 친구가 군면제자인 거예요. 나중에 기회가 돼 다시 부장님께 여쭤봤죠. 그랬더니 공채이긴 하지만 남자공채와 여자공채가 원래 직급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래서 “4급이 3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물었더니 현재 회사 제도상 그런 게 없다. 그런데 일단 여자공채를 테스트차원으로 뽑았으니 열심히 하면 회사가 4급이 3급이 되는 길을 만들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너한테 달려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국내기업에서 남녀차별을 경험한 뒤 외국계로 방향을 돌렸군요. 이후 이력이 화려합니다.

그 무렵 대학교 4학년 때 이력서를 냈던 씨티은행에서 마침 연락이 와 옮기게 됩니다. 운이 좋았던 것이 외국계에 수학과 출신이 이력서를 내는 일이 드물었는데 뽑혔어요. 당시 CFO분이 IT에 관해 앞서가는 관심을 갖고 전산화하려는 플랜을 가지고 컴퓨터를 아는 사람을 뽑으려고 했는데 그 당시 관련학과가 수학과였던 거죠. 4:1의 경쟁을 뚫고 뽑혀 이후 이렇게 오래 커리어를 쌓게 된 계기가 됩니다.

외국계 은행과 증권사를 오가며 다양한 업무를 맡아 했는데 커리어패스를 생각해서 그랬습니까?

씨티은행 파이낸스분야에서 8년간 일하며 일을 잘하고 똘똘하다는 평가를 들었는데 제 스스로 평가할 때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 부서에 7~8년 있으면 그 정도도 못할까 싶었거든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뭐냐면 그 자리에서 오래 있어서 잘하는 것과 그 사람이기 때문에 잘하는 걸 혼동해요. 저만 아는 거예요. ‘아 내가 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까지 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걸요. 열심히는 했지만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아는 스스로의 매너리즘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다가 씨티그룹이 한국에서 증권라이센스를 따면서 회계와 오퍼레이팅 책임자를 내부에서 찾길래 그리 옮기게 됐습니다. 조직이 작다 보니 셋-업하는 일을 도맡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이후 이런 저런 계기로 26여 년 넘게 외국계에 근무하며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근무하셨는데 이직 시 주로 어떤 점을 봤습니까?

저는 업무영역을 넓히면서 옮겼어요. 여기서는 파이낸스만 하다가, 그 다음에는 이만큼 더 넓히고, 또 IT와 오페레이션으로 확장을 했고요. 전문성을 쌓아 오다 보면 나중에 제너럴리스트로 가는 거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다양한 경험, 요즘 말하는 융합과 통섭이 이런 게 아닐까요. 제 경우 글로벌과 로컬, 은행과 증권, 그리고 기능으로 보면 또 이렇게 여러 가지를 했습니다. 개인적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이 믹스된 것도 또 다른 경쟁력이라고 생각해요. 애를 낳아 키운 것이 경쟁력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남자들은 배우지 못한 것을 배웠다는 뜻이에요. 100세 시대에 앞으로 어떻게 더해 가느냐가 숙제입니다. 우리투자증권에 다닐 때 한 외부강사분이 100세 시대에는 50대가 쨍쨍한 낮 12시라고 일깨워 주시더라고요.

이직 시 몹시 고민이 될 때는 어떻게 했습니까?

1996년에 회사를 옮길 때 제 나이가 40가까이 되었어요. 그 당시 저처럼 경력을 오래 쌓은 아이 있는 여자가 다른 일을 해보겠다고 회사를 옮기는 것은 참 일반적이지 않았기에 정말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인생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제 노하우인데 그럴 때는 하얀 종이를 한 장 꺼내요. 예를 들어 결혼할 때는 배우자로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지 생각나는 조건을 종이에 다 쓰고 나서 죽어도 제가 포기하지 못할 조건만 남겨놓고 하나씩 지워갔어요. 그러면 몇 개만 남는데 남편이 이 조건을 갖췄나 봤어요. 이렇게 하면 결정하 것이 아주 심플해져요. 그 방법을 썼습니다.

그때 어떤 조건들을 적었고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제가 생각하는 직장, 직업관, 뭐가 중요한가를 썼어요. 그리고 남아야 되는 이유를 보니 저의 가치관과는 거기가 먼 이유예요. 쌓아놓은 평판을 버리고 가는데 대한 리스크, 정년퇴직 보장에 대한 아쉬움 등 너무나 창피한 이유들이 나를 잡고 있었던 거죠. 반면 가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여기서 잘하고 있지만 떠나서도 역량을 발휘할지 보고 싶다’ 등이었고 결론은 “가야해” 였어요. 그렇게 옮겨서 조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셋팅해봤습니다. 이 일로 배운 점은 일단 부딪쳐보라는 겁니다. 어쩌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게 실제보다 커요. 한번 해보자 했더니 이때 제가 정말 많이 컸습니다.

회사를 옮기다 보면 힘든 일도 있었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회사가 인수합병 되면서 구조조정을 할 때, 그 일을 총괄해야 했을 때 인생의 다른 면을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 애정을 지켜낸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구나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가 달라질 때는 진짜 비포, 애프터예요. 그건 교육수준과도 상관없어요. 인간이 무엇인가,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문을 닫을 때 일어나요. 회사 셋업은 10번이고 하겠지만 회사 문 닫는 일은 또 하라고 조금 더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인포그래픽으로 정리한 이력서를 보니 명쾌하고 논리적인 분 같습니다. 조직에서도 그렇습니까?

이상하게 저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확실해지지 않더군요. 공자는 나이 40이면 불혹이라 했는데 저는 다혹 이었어요. 그래서 아, 공자님이 다혹인걸 알고 역설적으로 불혹이 되라고 하신 게 아닐까 생각도 했어요.(웃음). 20대 초반 젊었을 때는 옳고 그름과 가야 할 길이 명확했고. 조직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는데 직장 경력이 늘어날수록 생각이 많아져요. 예를 들어 이 회사에 있을 때 정답과 저 회사에 있을 때 정답이 다르다는 거죠. 같은 업종이고 비슷한 목적을 갖고 있는 금융계에서도 어느 회사에 있느냐에 따라 정답이 달라요. 어떻게 보면 방향성이나 지향점은 비슷한데 속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조직원들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방향에 공감해도 속도의 차이가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는데 더 설명해 주세요.

리더는 100km 속도로 가고 싶은데 조직원들은 10km로 가고 있어요. 리더의 마음대로 조직은 움직여지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참을 인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다려주는 것이죠. 리더가 “우리 이 방향으로 갑시다”하고 열심히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혼자 가고 있을 때가 많아요. 리더는 그게 아니라 “우리 같이 갑시다”하고 뒤에서 밀어줘야지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공감이 가네요. 그런데 조직에서는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지 않나요?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리더십도 어떤 상황에서는 강력하고 튀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하고, 어떨 때는 기다려주고 같이 가주는 리더십이 필요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리더십은 예술인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국내회사는 외국회사에 비해 기다려주고 같이 가주고 밀어줘야 해요. 제가 26여 년을 외국회사에 있다가 4년여를 국내회사에 있었는데 매일 매일 배우고 각성했어요. 외국회사는 컬처가 딱 숫자, 목표예요. 부연설명이 필요 없죠. 국내회사는 설명이 좀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조금 수정해야 되는 부분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수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러면 기다리고 설득하고 같이 가야 하는 거죠.

수정할 수 없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이쯤 살다 보니 내공이라는 게 있고. 자기의 신념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이것만은 죽어도 안 된다’ 그런 거죠. 진실성일 수도 있고, 믿음, 조직에 대한 로열티일 수도 있고, 그런 부분이 도전을 받는다면 그때는 결정해야겠죠.

조직원들을 기다리고 설득하는 구체적 방법이 있었습니까?

국내회사 조직은 칸막이가 높아요. 내 부서에서 옆 부서 일을 공식적으로 얘기하면 안되죠. 조직은 한명 한명이 다 자기가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얘기해서 융합적으로 집단지성이 나오는데 이렇게 하면 부서별 집단지성만 있을 뿐이죠. 그 부분에 대해 제가’구들장전략’을 썼습니다. 구들장이라는 게 연탄을 때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고 서서히 데워지잖아요.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하게, 물 스며들 듯이 해야겠다는 전략이었어요. 우리투자증권이 얼마나 큰 조직인데 이 항공모험을 제가 0.1도만 움직이려 해도 얼마나 힘든 일이겠어요. 서서히 바꿔서 0.1도만 움직이자는 생각이었어요. 임원이니 나름 보이지 않는 파워도 있었고요. 나 하나부터 바꾸고, 내가 참고, 입 밖으로 소리내지 말고, 기다리며 서서히 움직이는, 구들장 전략을 써보자는 거였어요. 개인적으로 국내회사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 인생은 마라톤, 나를 믿고 달려보자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엄격한 리더라고 생각해요. 제가 우리투자증권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아마 부드러운 리더십일 거예요. 재미있는 것이 저는 외국회사에 있을 때에는 한번도 부드럽다는 그런 말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곳에서 저에 대한 평가는 강하다. 공격적이다 였어요. 그게 뭐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랑 얘기할 때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본질에 집중하기보다 그 사람이 그 말을 어떤 분위기로 어떤 톤으로 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말하는 투는 바뀌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우리투자증권에 오니 다들 놀라는 거예요. 어떻게 저렇게 부드럽게 성장했을까. 달라진 건 딱 하나 참는 것 밖에 없는데. 보니까 본질에 포커스를 두지 않고 제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으로 말하냐를 더 본 것이죠. 하지만 저와 같이 일한 분들은 알 거예요. 제가 일에 대해서만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을요. 95까지만 가다 말면 안 하는 것이다, 100까지 가는 거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가 마지막 한 땀, 그 차이다. 저는 그렇게 믿거든요.

리더가 된 오 상무님만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요?

세련된 말로 하면 호기심이 많다, 일반적으로는 오지랖이 넓다? 저는 궁금한 게 많아요. 회의에 가면 회사 이슈가 다 제 일처럼 느껴지고 제가 제일 못하는 말이 “그건 제 일이 아닙니다, 그건 저의 본부 일이 아닙니다”예요. 회사가 니 일 내 일 따지다 보면 30퍼센트는 공중에 뜨는데 그럼 그 일은 누가 하고, 소는 누가 키워요? 저는 사장님 일이 다 제 일 같아요. 한 배를 탄 사람인데 옆 부서에서 배 밑에 구멍을 뚫고 있으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못 뚫게 하고, 이상한 것을 만들고 있으면 뭐냐고 물어봐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 타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약게 살지 않는다는 게 제 모토 중 하나입니다. 10을 하나 7을 하나 밖으로 보이는 차이는 없을 수 있지만 제 자신이 알잖아요. 중학교 때 제 좌우명으로 삼은 말이 ‘신독(愼獨)’이에요. 홀로 있을 때도 신실해라.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이 말에 감동 먹었어요.

사회생활에 남는 것은 사람 밖에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버티게 해준 좋은 인연도 있었나요?

네, 제가 씨티은행에 입사할 때 저를 뽑아주셨던 분께서 우리투자증권 사장님으로 오시면서 제게 같이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불러주셨어요. 그때 2년 정도 같이 일했었고 주니어 시절이라 그리 눈에 띄지도 않았을 텐데 좋게 보셨나 봐요. 그 뒤로 헤어져 뵌 적도 없고 그저 금융계에서 말씀만 간간이 전해 듣다가 20년 만에 다시 엮인 인연이에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되는 사람이 많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인연들이 나중에 꽃을 피우게 되기 때문에 이는 피는 데 그 인연들에게 당신이 어떻게 보이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해요. 이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는 없으니까요.

인연이 요즘은 네트워킹으로 전략화한 부분도 있습니다. 상무님의 네트워킹 방식은 무엇인가요?

남과 여의 네트워킹 방식이 달라요. 저는 남자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았고, 못했습니다. 회사일 하기도 바쁘고, 애들 보기도 바빴으니까요. 골프도 치지 않았고 술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저 나름으로 생각하는 네트워킹은 일로 맺어진 거예요. 저 오세임을 기억할 때, ‘언젠가 한 번 일해 보고 싶은 사람’, ‘필요할 때 생각 나는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떠오르게 하는 거죠. 그런 느슨한 네트워크도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직원들에게 본질에, 본업에 충실 하라고 해요.

선배들을 보고 여성리더의 꿈을 꾸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제가 마라톤을 해요. 40대를 제가 ‘다혹’이라 그랬는데 회사도 가정도 문제가 없는데 제 자신이 문제였어요. 저 스스로를 어쩌지 못해. 이걸 풀기 위해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어요. 풀코스를 4번 뛰었습니다. 42.195km를 뛰면 신청하고 나서 대회 당 일 출발할 때까지 자책해요. 내가 왜 이걸 신청했을까. 아무도 신청하라고 안 했는데, 내 돈 내고 왜 했을까. 그러다가 시작점에 딱 서요. 그때부터 혼자만의 레이스가 시작됩니다. 마라톤이 딱 인생의 축소판이에요. 6~7km까지는 정말 힘들다가 그 다음은 괜찮아요, 그러다가 5km정도 더 뛰면 너무 힘들고 다음 5km는 또 안 힘들어요. 정말 더 이상은 못 뛰겠다 하면 옆에 따라오는 앰뷸런스에 올라 타면 돼요. 그런데도 계속 자신을 다잡으면서 ‘아니야 완주는 못하더라도 서야 되는 시점이 지금이 아닐 수 있어. 그러면 저기 있는 저 전봇대까지만 가보자, 또 저기 있는 육교까지 한번 가보자.’ 그렇게 42.195km를 뛰어요. 어쩌면 35~40km에서 주저앉을 수도 있겠지만 20km에서 못 뛴다고 하지 않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는 못 뛸 것 같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인생일 거야’라고 믿고 달려보는 거죠. 달리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마라톤 한번 권해보고 싶어요. 특히 40대에게, 흔히 말하면 호르몬에서 오는 우울증일 수도 있고 왠지 가치관에 이상이 없는데 나 스스로 괜히 그럴 때, 한번 달려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