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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목표가 나를 이끈다

양미경 / 에이온휴잇 상무


1. 문학도에서 다국적 기업 임원으로

국문과를 나와 CFO까지 오르고 현재는 컨설턴트라는 특이한 커리어패스를 이뤘습니다.

그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국문과 동기들 중에 재무, 그것도 외국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저를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사회에서도 제 전공을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학시절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당시 남녀차별이 너무 심한 거예요. 크게 실망하고 바로 외국계 취업을 준비했습니다. 취업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란 걸 일찍 깨달았죠. 100여 개 외국계 회사에 무작정 이력서를 보낸 끝에 IBM과 뉴욕은행에 합격했습니다. 뉴욕은행을 선택해 3년 차 정도 되었을 때 커리어에 대해 눈을 뜨게 됐어요. 승진도 하고 제대로 커리어를 쌓으려면 상경분야 지식과 글로벌마인드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영대학원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회계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해서 일하다가 마흔을 앞두고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다양한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유학과 CPA시험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도 있고, 직장생활 처음부터 가능하면 5년 정도 주기로 이직을 하면 좋겠다는 정도의 희망사항이 있었어요. 재무가 저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에는 좀 보수적인 업무라서 이왕이면 재미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GAP이나 MTV 등에서 제안이 왔을 때 선뜻 응했어요. 관리직급에 오른 후부터는 재무를 중심으로 인사와 그 외 지원부서 총괄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HR컨설팅으로 온 것은 커다란 변화는 아닙니다. 컨설팅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많이 만날 수 있어서 무척 즐거워요. 경영지식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사람에 대한 것을 포함해 비구체적인 내용을 아울러야 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더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에이온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스폰서라는 점도 흥미를 끌었지요.

그래도 경영대학 공부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인문대 출신이라 경영관련 지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꾸준히 공부를 하도록 만든 동기인 것 같습니다. 늦게 한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건강과 경제문제도 힘들었어요. 대학원 시작하고 임신을 했는데 입덧이 심해 영양실조로 두 번이나 병원에 실려 갔었고, 생후 두 달 된 딸을 안고 수업에 들어간 적도 있어요. 딸이 수험생일 때는 밤늦게까지 함께 공부하기도 했고요. 다행히 이것저것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회사에서 좋은 기회도 많이 주어진 편이에요. GAP에서는 코넬대학, 에이온휴잇에서는 하버드대학과 공동으로 코스를 지원해줘서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었어요. 카이스트 컨설팅과정은 매주 휴가를 내면서까지 자비로 공부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정말 못했는데 미국 경영대학원 자격시험인 GMAT이나 경영대학원 수학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경영 실무에서 원하는 수학적 사고는 고난이도의 수학지식이 아니라 전반적인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한 정도의 수준이고 모든 학문은 서로 유기적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을 위한 특강에 가면 직업을 선택할 때 학부 전공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유연한 시각을 가지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일찍 임원 레벨에 올랐는데 어떤 점을 높이 인정받았다고 보나요?

재무와 인사를 포함한 지원 부서를 총괄한다는 것은 보기보다 큰 파워를 가지고 있는 자리예요. 따라서 회사 입장에서는 리스크도 크지요. 기업 이미지 때문에 쉬쉬해서 그렇지 이 직무를 남용해 큰 문제를 남긴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 포지션에는 Integrity가 최고의 가치입니다. 실제뿐만 아니라 상사가 그렇다고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에피소드 하나는, 예전에 매출액을 부풀려 보고하는 걸 막아서 저랑 갈등이 많았던 임원이 있었는데 그 분이 나가서 자기 회사를 차린 다음에 전화를 했어요. 자기 회사에 CFO로 와 달라고요.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것에 대해 혼돈스러운 때였는데 자신감을 가지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일단 상사와 신뢰관계가 형성된 후에는 많은 일이 쉬워지지만 이게 잘 되지 않아 힘들었던 적도 많습니다.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지사장과 본사 CFO간의 밸런스가 아주 중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리고 가정주부가 전구 갈기부터 돈 관리까지 보이지 않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지원부서 팀장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제가 이런 건 좀 잘하는 것 같습니다. MTV에 있을 때 CEO께서 이런 저의 장점을 많이 알아봐주셨고, 덕분에 본사직급으로 Vice President까지 승진할 수 있었어요. 임원은 CEO와의 코드가 중요한데, 이 부분은 노력도 있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임원이 된 이후 어떤 일들을 해냈습니까?

지원부서는 회사에서 확 눈에 띄는 업적을 만드는 부서는 아니에요. 오히려 조금만 문제가 생기면 크게 드러나는 편이죠. 사장님과 본사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문제없도록 음으로 양으로 서포트를 잘 한 것이 결국은 제 역할이고 성과예요. 경력 중 세 번의 M&A와 나스닥상장, 설립과 폐업 등 큰 일이 많았는데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역할을 했고, 실무적인 지휘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성취감이 있었던 일 중 하나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계약한 강남으로의 회사 이전을 실행해야 하는데 당시 경기가 급락한데다 환율문제까지 겹쳐 회사로서는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고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제가 위기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준비해서 그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의 최고결정권자를 직접 만나 협상해 큰 금액의 비용절감을 이뤄낸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 번이나 회사 이전 경험이 있어 ‘이사전문CFO’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어요. 지금 회사에서는 입사해보니 컨설팅회사라 좋은 콘텐츠가 참 많은 거예요. 회사에서는 마케팅 차원에서 클라이언트들에게 무료 강의를 많이 하고 있었고요. 그래서 본사 임원들을 초청해 유료 컨퍼런스를 기획, 큰 성공을 거두고 이를 더 발전시켜 10주짜리 최고경영자과정까지 개설했습니다. 특별한 새로운 일이었고 아시아 사장님도 치하해 주셨습니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하는 스타일인가 봅니다.

새로운 시도라기보다는 재무 담당자들이 정적인 경우가 많은데 제가 스스로를 판단해보면 속으로는 되게 액티브한 것 같아요. 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는 타입입니다. 자발적으로 사보를 만들어 편집장을 겸하기도 하고, 다양한 인력 예측 하에 재무상태를 시뮬레이션 해보고 싶어 하는 지사장님을 위해서는 엑셀로 아주 쉽게 사용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직원 건강을 위해 회의실에 탁구대를 놓고, 휴게실에 샌드백과 발 마사지 기구를 들여놓기도 했고요. 지금 회사에서도 재미있는 복리후생 아이디어를 냈는데 ‘워킹 인 더 클라우드(walking in the cloud)’라고 복잡한 업무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때 부서 전체가 삼청동 카페 같은데 가서 일합니다. ‘해피밀(Happy Meal)’은 우리 부서 직원들이 다른 부서 부서장과 점심을 먹는 날이에요. ‘찜’을 당한 부서장님이 밥을 사시는 거죠. 하하. 또 직원들의 직무능력개발을 위해 업무 로테이션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당장은 일이 많아지다 보니 반발도 있었어요. 하지만 조직에서 어느 정도 결정권을 가진 위치가 되면 소신껏 실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위로 올라갈수록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임원이 되고 나니 어떤 일로 힘들던가요?

가장 힘들었던 일 중 하나는, 세계적인 글로벌그룹과 국내 대기업이 합자회사를 만들 때였습니다. 전 회사에서 VP로 승진되고 얼마 후 호주 헤드헌팅사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왔어요. 큰 의욕을 가지고 이직하여 JV 설립부터 관여하였는데 1년 만에 갑자기 M&A로 회사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실패한 이직이라는 것 때문에 괴로웠지만 아무 동기부여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회사 정리를 위해 야근을 하는 직원들에게도 상사로서 너무나 미안했고, 우울했어요. 이 일로 인해 5년마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항상 느끼는 게 사람에 대한 고민입니다. 남자 상사들은 직원들 불러다 놓고 큰소리도 치고 이러면서 충성심을 유발하던데 저는 그러지도 못하고 잘 보듬어주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안되더라고요. 저도 무섭게 해봤다가 후회했잖아요. 한번 마음먹고 큰소리를 쳐봤는데 회사 내에 두고두고 그 얘기가 도는 거예요. ‘아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깨닫고 그 방식은 포기하고 원래의 내 방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 문제에 있어서 혼자서 해결이 안되면 상사에게 논의해서 솔직하게 제 한계를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입니다. 늘 노력은 하지만 훌륭한 리더십은 영원한 숙제예요. 어떤 직원은 헤어진 지 10년이 다 되도록 저를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데, 또 어떤 직원은 저 때문에 이직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잘 하시는 분들 존경스럽습니다.

직장 내 남녀 성별에 따른 차이, 세대 차이를 많이 느끼시는지요?

저는 사실 여성 리더를 WIN에 참여하기 전에는 많이 못 봤어요. 제 선임도 거의 없었고. 여자와 남자가 틀린 게 아니라 그냥 다르다고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남녀차이 보다는 세대 차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희 세대는 상사에게 맞추는 게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배운 세대라 부딪칠 일이 적었거든요. 그렇다고 개성을 존중 받고 자란 요즘 세대들에게 같은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봐요. 최근 부서장이나 매니저들 교육이 많은 이유도 대부분 위에 잘해라 가 아니라 아랫사람과 잘 소통하라는 거죠. 잘 소통하되 잘못된 것은 따끔하게 바로 잡아야 하는데 헷갈릴 때가 있어요.
한번은 비서가 점심식사를 간 사이 중요한 외부 손님께서 오셔서 부득이하게 다른 신입 직원에게 차 한 잔을 부탁했더니 자기가 입사할 때 절대 회사에서 커피 심부름은 안 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거예요. 이 사건으로 직원들과 긴 토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직원의 직속상사인 매니저가 요즘 친구들 그렇다면서 그냥 두자고 해서 권한이양 차원에서 참았지만 ‘회사에 오는 모든 고객은 나의 고객이기도 하다’라는 마인드를 가지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잖아요. 세대차이만으로 볼 수 없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여성 리더의 롤모델이 있나요?

따라하고 싶다기보다 인상적인 리더는 힐러리 클린턴입니다. 조지워싱턴대학 졸업식에서 영부인인 힐러리 클린턴이 축사를 해줘서 직접 봤는데 그녀를 잘 알지 못했는데도 포스가 확 느껴졌어요. 풍겨나는 아우라가 부럽더라고요. 지인 중에도 몇몇 여성 임원들께서 그러세요. 말해 보면 되게 소녀 같으시지만 인상만으로는 포스가 느껴지는 분들이 있는데 저랑 나이차도 별로 안 나는데 기대고 싶고 그래요. (웃음). 리더에게는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 Just do it!

현재 위치에서 꾸는 앞으로의 꿈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 얘기가 자기가 어렸을 때 큰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게 목표였는데 목표를 너무 일찍 이뤘다는 거예요. 그때 느꼈대요. ‘이렇게 꿈을 이룰 줄 알았다면 더 큰 꿈을 꿀 걸.’ 저도 마찬가지예요. 개인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큰 꿈을 꾸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서 작게라도 세상에 대한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준비하고 있구요. 또 30여 년의 직장인의 자리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주위를 둘러보면 정년퇴직이든, 귀농이든, 건강상 이유든 개인사업을 위해서든 어쨌든 아름답고 즐거운 은퇴를 본 적이 없어요. 모두가 분노하거나 아쉬워하더라고요. 속상하지만 저도 예외는 아닐 텐데, 은퇴를 하면 자신에게 그 동안 고생했다 칭찬하고 저 하고 싶은 대로도 살아보고 싶어요. 마흔이 됐을 때는 세상 다 산 것 같더니 50대가 되고 보니 또 그때가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는지 … (웃음)

일 하랴, 아이 키우랴 취미생활 하나 못했다는 리더들이 많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싶은 게 너무너무 많았는데 일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해보고 싶은데 회사에 매어 있느라 하지 못한 일들을 가능성에 상관없이 수첩에 적어놔요. 여행/ 공부/ 취미/ 이런 식으로 정리해 제가 갖고 다니는 프랭클린 플래너에 붙였는데 뭐 대단한 일은 아니고, 모란오일장 가보기, 평일 대낮에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잡지보기, 재봉틀 배우기, 동네에 사랑방 같은 옷가게를 열어서 새벽마다 동대문에 옷 떼러 다니기, 클라리넷, 시실리 섬에서 한 달간 아무것도 안하기, 템플스테이, 혼자 미국을 자동차로 일주하기, 바리스타 자격증 따기, 중국어 등등을 적어놓고 성취한 일은 하나씩 지우죠. 요즘도 적고 있는데 적기만 해도 스트레스 해소가 돼요.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하. 어린 자녀가 있는 후배들에게는 무리하게 취미생활을 하지는 말라고 조언합니다. 아이가 크면 시간이 나기도 하고, 또 가족 간에 서로 이해되는 한도에서 해야 즐거운 법이니까요.

딸과 회사 얘기도 나눈다고 했는데 자녀교육은 어디에 중점을 뒀습니까?

쉽지는 않지만 자녀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딸이 초등학생 때 공부에 집착하거나 승부욕이 큰 성향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대신 다른 장점이 많더군요. 부모로서 좀 아쉬웠지만 좋은 대학을 향한 공부보다 자신의 장점을 키워주고자 했고 그게 제 딸에게는 외국어였어요. 그렇다고 학원에서 외국어공부를 집중적으로 시키지는 않았고 동기부여를 해주려 노력했습니다. 본사에서 방문객이 오면 개인적으로 저녁이나 주말에 딸과 함께 나가 가이드도 해주고 밥도 사주고 하는 식으로요. 우리 아이 세대는 글로벌시민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마인드를 심어주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어릴 때부터 회사 일을 자연스럽게 의논해서 딸이 직원들을 거의 다 알아요. 또 대부분 직장맘들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독립심을 키워 주려 애썼죠.

어떤 식으로 독립심을 키워주셨나요?

사실 저같이 가족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직장맘들은 의도적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죠. 딸이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어요. 외국 손님들을 태우고 급히 회의 장소로 가는 중에 비가 억수로 내렸어요. 저희 집 근처를 지나는 데 저 멀리서 딸이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신발주머니를 빙빙 돌리면서 복지관으로 가는 거예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지만 일정상 모른척하고 회의장으로 향했던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푹 젖은 노란체육복이 눈에 선해요.
딸이 대학교 1학년때 인턴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는 임원들이 많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기회를 찾아보라고 조언했어요. 딸이 자기가 좋아하는 회사의 외국인 사장님께 이메일을 썼고, 그 분이 딸을 기특하게 여겨 친절하게도 싱가포르 지사에 소개해 주셨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지만 시도하지 않았다면 올 수 없는 기회였죠. 딸의 말이 인턴업무도 그렇지만 직접 해외인턴서류수속을 하고, 숙소를 찾고, 유스호스텔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 것이 더 큰 경험이었다고 말하더군요. 또 고등학교 때부터 이력서를 써보게 했어요. 이력서를 쓰다 보면 여기에 내가 무얼 채울 것인가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요.

상무님처럼 임원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자기 일을 잘하는 것을 넘어, 우리 회사가 원하는 임원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리더가 바뀔 때마다 우르르 임원이 바뀐다면 좋은 회사라고 볼 수 없지요. 훌륭한 실무자가 관리자가 되면서 무너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얼마 전 꽤 알려진 기업에 다니는 어떤 사람이 “우리 회사는 그냥 버티기만 하면 다 임원이 돼요. 똑똑한 사람은 다 나가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자기 회사에서 임원이 되고 싶지 않은 걸까요? 임원이 존경 받고, 권한도 많고, 대우도 받고, 월급도 많아야 나중에 내가 그 자리에 가고 싶어지는 건데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 회사에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자신의 회사 임원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과정과 여러 가지 장점들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어요. 그게 빽이고 운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말입니다. 또 내가 사장이라면 누구를 임원으로 쓸까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WIN의 멘티들을 포함해 후배들에게 격려의 조언 부탁합니다.

유학, 결혼, 출산 등으로 고민하는 후배들 많은데 저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을 맹신합니다. 제가 미국에 유학 갔을 때도 여건이 좋은 건 아니었어요.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래도 학비가 없을 때는 휴학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어떤 장학재단에서 미국 전역의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공지를 냈는데, 선배들에게 물으니 그건 하늘의 별따기라 우리 학교에선 받아본 사람이 없다며 시간낭비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정말 돈이 아쉬웠기 때문에 공들여 신청서를 제출했고 결국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학교나 학점보다 절실함이 더 중요한 기준이더군요. 게다가 유학도중 딸을 낳았는데 유학생은 저소득층에 해당돼 기초생필품을 지원받아 키웠고요. 알고 간 것은 아니지만. 뜻이 있으면 방법은 늘 따라옵니다.
그리고 목표가 명확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대학원에 간다는 직장인들이 많은데 정작 물어보면 어디가 더 좋은 직장인지 답을 못해요. 이력서를 낸 적도 없는 어느 서치펌에서 제 스펙을 ‘여성, 재무와 지원부서 임원경력, CPA, 영어소통가능, 다국적 기업 경험, 엔터테인먼트/소비재 경력’ 이라고 적었더군요. 다이내믹하게 살아왔지만 경력이 한 방향으로 정리돼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장기, 단기 인생 목표를 미리 세운다면 저보다 삶이 훨씬 수월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인생이라는 것이 운도 따르지만 목표가 있다면 목표가 나를 이끌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