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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경력단절극복, 욕심을 줄이고 기회를 잡아라

박찬주 / 듀폰코리아 이사


1. 경단녀? 나는 일할 때 행복하다

요즘 말하는 경력단절여성의 성공 사례입니다. 다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결혼하고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따라가게 됐습니다. 일을 그만두는 건 아쉬웠지만 백일 된 아기가 있었고 당시만 해도 주말부부를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둘째도 낳고 키우면서 4년 7개월 정도 경력 단절 기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크는 모습이 예뻤지만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나는 전업주부로 평생을 살 사람은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같은 사택에 살던 앞집 여성은 간호사 경력이 있었는데 그분은 살림하면서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보는 하루하루에 정말 행복해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행복해지려고 해도 도저히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시에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살아서 행복하구나 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어떤 부분이 제일 견디기 힘들던가요?

회사에 다닐 땐, 전 일을 열심히 재미있게 했고 잘한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크고 작은 성공도 경험했고요. 그런데 집안일은 일단 못하고, 재미가 없고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는 거예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 존재감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나는 도대체 이 세상에 어떤 가치를 주려고 사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되더군요. 성취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제가 되게 무가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둘째가 돌을 지날 무렵부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과연 이 모습이 내가 원하던 모습인가, 앞으로 이렇게 10년, 20년 살면 나는 어떻게 될까 생각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물론 두렵기도 했어요. 가족과 사회가 제게 요구하던 틀을 벗어날 용기가 필요했고, 제가 원하는 바를 주장해야 했어야 했는데 그때까지 제가 30년을 그렇게 살 지 않았으니까요. “앞으로 30년은 어떻게 살래?” 제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앞집에 사신 분께 감사해요. 저를 반추할 수 있는 색다른 거울이 제 앞에 있었으니까요.

긴 인생을 놓고 보면 30년 만에 이런 고민을 한 것도 늦지 않았네요. 일을 해야겠다 마음 먹은 뒤 곧바로 실행에 옮겼습니까?

네, 그때라도 한 게 정말 다행이죠. 주위의 반응이 “갑자기 너 왜 이러니” 이런 분위기라 주위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설득해야 했지만요. 제가 그만둔 회사의 선배 후배와 가끔 연락하며 지내고 명절에 서울 올라오면 사장님도 찾아 뵙고 그런 관리는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마음을 먹고 뭐라도 조그만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툭 꺼냈더니 그 회사에서 마침 울산 쪽에 영업을 해보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네가 파트타임이라도 해보겠냐고 제안하더라고요. 바로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팩스로 업무지시 받고 밖에 나가 거래처 개발하고 한 달에 한번 서울에 올라와 회의하고 그랬어요. 월급은 굉장히 작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사회와 소통하고 영업한 거죠. 지역 연고도 없이 연락처와 이름만 알면 찾아가서 세일즈를 했어요. 그때 우리 회사가 연 매출 100억 원 정도 규모였는데 제가 지역에서 한게 5~6억이었으니 나쁘지 않았어요.

파트타임 일을 잘 해내고 나니 더 큰 포부가 생겼을 것 같군요.

그렇죠. 조금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이런 낯선 곳에서도 하는데 조금만 인프라가 있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본격적으로 취업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었는데 받아주는 데가 없었어요. 나이 서른 하나에 애도 있지, 사회 경력은 짧지, 이대로는 일이 없겠구나, 어떡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아이 둘을 떼어놓고 미국에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학을 좀 더 다지면 차별화 될 것 같았고 자신감을 회복할 계기도 필요했고요. 다행히 친정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맡아주셨고 마침 적금 만기가 돼 떠났습니다. 이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미국으로 떠날 때의 결심이 떠올라 주저앉았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이고, 뭘 원하는 지를 정확히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를 선명하게 알면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기준이 명확해지니까요.

유학으로 어학실력을 쌓고 자신감을 회복하고 돌아와서는 취업전선에 성과가 있었습니까?

귀국해서 다시 울산으로 가지 않고 애들이랑 친정에 들어갔어요. 남편에게는 “작정하고 떠나왔으니 서울에서 일을 찾겠다. 나는 안 내려갈 거니 당신도 서울로 올라올 방법 찾아봐라”라고 했죠. 그렇게 6개월 친정에 얹혀 살며 열심히 구직을 했는데 취직이 안됐어요. 어학연수도 하고 왔지만 여전히 나이는 많고 경력은 짧았던 거죠. 원하던 곳에서는 인터뷰도 못해봤고. 그래서 첫 직장으로 다시 갔습니다. 하지만 가서 보니 후배는 위로 올라가 있고, 예전에는 선배였는데 지금은 아니고 애매하고. 저는 열심히 겸손하게 잘 해보려고 각오하고 갔지만 거기 계신 분들이 부담스러워했어요. ‘여기서 오래 있는 건 내 욕심인가 보다’ 고민이 들 때쯤 대상에서 제안이 와 옮겼습니다. 거기서 마케터로 일하며 유리천장도 경험해보면서 글로벌업체에 대한 꿈을 키웠고 헤드헌터의 제안으로 듀폰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영업 파트에서 보기 드문 여성 임원입니다. 술자리도 많고 영업은 남자들도 힘들어 하는 일인데 견딜 만 했나요?

듀폰에서 2010년에 임원이 됐는데 비즈니스 리더 미팅 자리에 가면 여전히 홍일점입니다. 처음 듀폰에 와 식품소재쪽 사업부를 맡아 식품 신소재를 국내외 식품회사에 소개, 판매하면서 회식하고 출장 가고 영업 사원이 하는 일은 다 했습니다. 다행히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 효소가 없지 않았고 또 영업은 제가 접대하는 입장이다 보니 흐트러질 수 없다는 정신력이 더해지더군요. 하다 보니 2차, 3차의 민망한 자리에 대한 대처 요령도 생겼고요. 물어볼 여자선배도 없었으니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스스로 터득해 나갔죠.

영업이 체질에 맞았습니까?

결혼 전 첫 직장으로 작은 식품소재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는데 제가 만든 제품을 제가 제일 잘 아니까 직접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말씀 드렸더니 윗분들이 허락해 주셨어요. 해보니 제가 의외로 낯선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고 발표하고 설득하는 것을 잘 하더라고요. 물론 유쾌한 경험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자가 영업하러 오는 경우가 거의 없던 시대라 저를 한번 본 분들은 기억해주셨고 그게 경쟁력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거죠.



2. 먼저 나를 아는 리더가 되라

임원이 되고 나니 중간관리자 시절과 어떤 부분이 차이가 있었나요? 제가 아시아태평양마케팅 매니저 일을 맡으면서 임원으로 승진하다 보니 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완전히 벗어났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의사결정 과정만 해도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어요. 예전에 제가 생각지도 못한 더 많은 사람들과 협의하고 조정하면서 의사결정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과가 저한테 대단히 중요하게 다가왔고요. 임원이 된 뒤에는 제가 뭘 하느라고 바쁘기보다 팀원이 하는 일을 챙기는 일로 더 바빠요. 팀원이 일에 만족하는지, 일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살피고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면서 보다 더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피플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이 부각되는군요. 어떤 방법을 주로 쓰나요?

피플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는데 “어떻게?”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게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리더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MBTI 등 성격유형검사를 다양하게 해봤고 저랑 가까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해봅니다. 그러면 서로 얼마나 다른 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테스트 해보니 박찬주는 어떤 사람이던가요?

저는 성과지향주의자이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추진력도 있는 사람이더군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상대방을 말로 설득하는 재주도 탁월하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피플 매니지먼트 관점에서는 이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성과 지향적이다 보니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데 둔한 거죠. 단도직입적인 스타일이라서 주의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감정적으로 다치게 해요. 또 짧은 시간에 말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데는 강하지만 어려움이 있거나 관계에 문제가 있으면 깊이 들어가서 짚어주는데 약하다고 나왔어요. 몇 년 전, 팀원들과 MBTI 조사를 같이 해봤더니 놀랍게도 6명이 다 다른 타입으로 나온 거예요. 예를 들어 눈싸움을 하는데 저는 이끌고 누구는 눈을 뭉치고 누구는 앞에 가서 눈을 던지고 누구는 뒤에서 라면도 끓여주고 하는 식으로. 다행히도 표현된 역할들이 팀에서 각자 맡은 일과 잘 조화가 되더라고요. ‘와 이래서 최강 팀워크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리더의 중요한 역량이 셀프 어웨어,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하던데 자신과 팀원을 잘 이해하고 서로의 장점과 단점이 뭔지 파악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직원 각각의 성향을 이해하고 맞춰주는 건가요?

네, 그래서 저는 게으르고 똑똑한 리더가 맞는다고 봐요. 리더는 경험이 많기 때문에 솔루션을 빨리 찾을 가능성이 있죠. 어떤 일이 있을 때 리더가 부지런하게 챙겨서 해버리면 팀원들은 기회가 없어요. 다들 훌륭한 인재인데 이 친구들에게 누군가 가르쳐서 “이렇게 해야 한다, 이게 답이야”라고 하면 얼마나 반영해서 그들의 성과를 낼까 의문이에요. 그래서 어떤 때는 이건 아닌 것 같은데도 일단 한번 해보라고 오케이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리더라고 생각하나요?

최근에 좋은 코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제가 코칭에 관심이 많아요. 팀원들의 성장을 지켜보는데 관심이 많고 성장을 돕는데 큰 보람을 느끼거든요. 저를 믿고 따르는 팀원들이 성장하고 칭찬받으면 보람 있고 좋습니다. 거기서 성취감도 느끼고요.

여성 리더들을 어려워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습니다.

똑똑한 여성들은 허점 없고 꽉 막혔고 상대방의 접근을 막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너무 희소하다 보니 그럴 거라는 선입견도 작용하는 것 같고, 실제로 여성들이 방어벽을 많이 치는 면도 있죠. 다치지 않으려고 이런 저런 방어기재를 쓰는 건데 그러면 자기 손해라고 생각해요.

임원에게는 성과의 압박이 있습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임원으로 승진한 뒤 제게 처음 주어진 업무가 인도시장의 5개년 사업 전략을 짜는 일이었습니다. 인도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별다른 지식도 없는데 막막했죠. 대단히 부담이 되어 멘토께 상의를 드렸어요. 그때 멘토분이 인도에 대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인도분을 소개해주시면서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일로만 접근하지 말고 인도팀과 어떻게 팀워크를 만들까 고민하라고, 그러면 일은 저절로 될 거라고요. 어려운 일이었지만 임원이 되기 전과 후를 가르는 큰 배움이었습니다. 한국 사람도 아니고 인도 사람과 팀워크를 만들어 정해진 시간 안에 만족할만한 성과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이로 인해 어떤 업무든 사람이 하는 일이고 리더는 사람을 통해 성과를 내야 하며 따라서 리더가 가장 노력하고 애정을 쏟아야 하는 대상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임원이 되고 난 뒤 부딪친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임원급에서 공유되고 고민하고 바라보는 관점은 밑에서 보던 것과는 굉장히 다르더군요. 그러다 보니 밸런스라고 할까요, 장기적인 사업 관점과 단기성과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했습니다. 제가 볼 수 있거나 저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좀 더 장기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기성과는 내야 하니까 밸런스를 조절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또 공유할 수 없는, 혼자 고민해야 하는 문제도 많아지다 보니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으로서 행복한가요?

네. 어쨌든 제가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니까요. 조심해서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앞으로 더 높은 자리로의 승진을 기대하고 있나요?

임원이 되기 전에는 제가 임원까지 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매니저 중에는 여자 임원도 없다는데 내가 뭐 될 수 있을까, 되고 싶기는 하지만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왔네요. 중간 목표, 아니 중간보다 좀 위까지는 달성했다고 보는데 아직도 더 가고 싶은 목표는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도록 더 노력할 계획인데 5년 안팎에 다음 목표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한편으로는 선배들이 은퇴 준비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고 하셔서 퇴직한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뭘까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임원을 꿈꾸는 여성 중간관리자들의 고민 중 하나는 남자 직원들과의 소통인데요, 그로 인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나요?

전 직장에서 과장으로 근무할 때 남자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 그 친구가 3개월 만에 저랑 일 못하겠다고 사표를 쓴 일이 있었어요. 제게는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고, 상당히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남았고 지금 후배들과도 공유하는 실패담입니다. 소위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 똑똑하고 에너지도 넘치는 친구였는데 자꾸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고 틀려서 제가 빨간펜 선생님처럼 계속 바로잡았죠.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가 똑같은 숫자를 세 번 틀리자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너 바보니, 어떻게 똑같은걸 세 번 틀려. 다시 해와”라고 했더니 이 친구가 얼굴이 벌개져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자기는 평생 그렇게 자존심 상한 말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는군요. 여자상사와 남자부하간에 서로 초보로 맞춰주지 못하고 원칙대로 하다가 생긴 일이었죠. 당시에 상사 등 주위에서 한결같이 저에게 뭐라고 하더라고요. 상하관계가 아무리 중요하고 상사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내는 조직문화라지만 여자상사에게는 용납이 안 되는 것이 있구나 깨닫게 됐고 이후로 조심했습니다.

이런 일로 고민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말을 주고 싶습니까?

여성들이 실력도 있고, 프라이드도 강하죠. 그런데 저도 그랬지만 여성들이 주장이 강하다거나 세다거나 피곤하다거나 잘 따진다거나 이런 부정적 피드백을 듣는 이유들 중 하나가 말투에 있다고 봐요. 남자들은 너무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고 너무 흑백이 명확한 것도 싫어하거든요. 그 점을 의식한 뒤에는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어때요?” 라는 식으로 많이 의견을 구하고 물어봤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말투를 살짝 바꿔 남자들의 저항감을 누그러뜨린 거죠. 그리고 평소 조직 내에 서포팅 그룹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상사는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고 동료 중에도 나를 지지해줄 내 편을 만들어두면 도움이 됩니다. 저는 서포터즈들에게 코칭을 받고 피드백 받는 것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내부에 나를 지지해줄 그룹을 만들어두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위험하죠. 필요에 의해 깨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같은 프로젝트로 일했던 사람들과 좋은 성과를 내고 나면 그 팀과 좋은 팀워크가 생기고 그 중 몇 명과는 좋은 동료관계가 구축되더라고요. 그 다음, 상사를 내 편으로 만들라고 했는데 사실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나면 정말 힘들죠.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상사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 가 있다는 것은 조직이 그 사람의 어떤 능력을 인정한 것이고 내가 그 능력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숙제가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입니다. 이사님도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그럼요, 우리 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밤새 열이 펄펄 나며 아프더니 아침에도 열이 안 떨어졌어요. 저는 회사에 중요한 발표가 있어서 꼭 출근해야 했고요. 두 시간 거리에 계신 친정 어머니께 전화를 하고 보리차를 끓여 주전자에 담아놓고 얼음주머니를 잔뜩 옆에 두고 아이 손을 잡으며 “할머니 올 때까지만 기다려”하고 나온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나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회사를 그만둬야 하지 않나 깊이, 많이 고민했는데 그러다가 도달하는 결론은 ‘아 나는 이미 지난 언젠가 이렇게 살면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지’라는 그 순간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아이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만두면 분명히 얼마 안가 그 사람을 원망하며 후회하게 될 거다, 그리고 불행하게 사는 나를 보며 지낼 거야 라는 지점에 딱 도달하면 다시 마음을 고쳐먹곤 했습니다. 아이랑 대화가 되면서는 엄마는 일할 때가 참 행복하고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엄마는 믿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직장 일로 많이 힘들 때는 어떻게 조절했나요?

라이프 스테이지에 따라 밸런싱을 해야지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회사 안에서 저를 도와주는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피드백을 받은 것처럼 힘들 때는 가족에게도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요. 5년쯤 됐나, 제가 출장도 너무 많고 해서 어느 날 남편에게 아침 준비를 해달라고 했더니 뜻밖에 선선히, “어 그래? 그럼 내가 해보지” 하더니 참 잘하는 거예요, 하하. 약간 지혜롭게 말하는 기술은 필요한데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이었어요.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도움 받을 기회조차 없는 거니까.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며 지키려고 한 원칙이 있나요?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우려고 했습니다. 제가 독립적으로, 자주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이들한테도 그런 모습을 기대했어요. 단점은 굉장히 답답하다는 거예요, 하하. 회사에서든, 아이를 키우는 일이든 제가 지나온 트랙은 하나잖아요. 이런 길로 가면 여기까지 갈 거라는 것은 제 경험치이고 다른 길로 갔다면 어떤 세상을 만났을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리더로서도 “내가 다 해봤는데” 이렇게 말하는 게 나쁘듯이 부모도 아이에게 이 길이 최선이고 정답이고 나머지는 틀린 답이라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경단녀의 복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경력 단절 후 주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다시 복직하려고 할 때 너무 높은 기대를 맞추려고 하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실패했어요. 가고 싶은데 다 지원했지만 안됐거든요. 그런데 사실 복직 자체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일단 경력단절을 끊어내고 사회로 돌아간 다음에는 노력하면 단절을 복구할 기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직하면서 한꺼번에 다 욕심을 내면 기회가 제한적일 테고 복직이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더 많이 주저하게 되겠죠. 이쯤에서 내가 복직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약간 기대치를 희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작은 단기적 희생은 더 큰 기회를 주는데 의미 있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