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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더불어 함께 가는 리더

박정현 / LnA 컨설팅 주식회사 대표이사


1. 혼자 이룰 수는 없다

유명 헤드헌팅 업체를 비롯해 MTV, 구글 등 브랜드가 강한 기업에서 성장했습니다. 전략적으로 커리어 패스를 쌓은 건가요?

대학 졸업 전에 유학을 준비하다가 집안 사정으로 유학을 포기하고 지금은 대기업이 된 국내 업체에 취직을 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내회사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하였고 유학을 가려던 꿈을 바꿔서 외국계 기업으로 눈을 돌렸어요. 선배의 소개로 그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에 들어갔다가 클라이언트였던 MTV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골든에이지였던 것 같아요. 젊은 열정이 넘치기도 했지만 일에 미쳤다는 소리 들을 정도로 일을 사랑했고 열심히 일한 결과 MTV 아시아 본사에서 오퍼를 받고 해외에 나가고 싶은 대학시절의 꿈을 내 돈 안들이고 이뤘으니까요. 덕분에 두 딸들도 어릴 때부터 외국생활을 해야 돼서 영어를 제2의 모국어처럼 쓰며 자랐지요.
MTV에서 뉴미디어시장에 대한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했기에 구글에서 제의가 왔을 때 옮기는 건 자연스러웠어요. 구글에서는 인터넷기반의 새로운 산업분야에 대해 월급까지 받으며 배울 수 있었으니 제가 고맙죠. 23년의 제 경력을 돌아보면 인사컨설팅이 30%, 마케팅과 영업이 70% 라고 볼 수 있어요.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즐겁게 일하자’는 게 제 모토였는데 특히 세계적으로 브랜드가 강한 MTV나 구글과 같은 기업에서 근무한 덕에 많은 걸 배우면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더 이상 회사에 기여할 일이 없다면 언제든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위해 떠났지요.

요즘 젊은 층이 입사하고 싶어 하는 글로벌업체에서 이력을 쌓은 덕분인가요, 여대생들의 강의 요청도 많고 워너비 선배로 꼽힌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웃음). 지인이 암으로 돌아가셔서 추모예배에 갔더니 OOO에 “50평생 열심히 살아 후회가 없다” 라고 쓰셨더라고요. 저도 사실은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고, 후회 없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밝고 씩씩한 모습에 후배들이 닮고 싶은가 봅니다. 리더로서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사실 제가 어떤 리더 스타일을 만들고 정형화하고 싶지는 않아요. MTV에 근무할 때는 쌈닭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서웠대요. 하지만 구글 코리아에서는 관대하고 친절한 리더라는 평을 들었어요. 한마디로 때론 엄격하지만 언제나 무슨 얘기도 할 수 있는 리더. 항상 깨어있기 위해 노력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며 머리가 아닌 가슴을 움직이는 리더가 되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후배들에게 어떤 리더가 되라고 단정 지어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 하니까요. 다만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면 좋겠고 내가 받은걸 선순환 시켰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절대 나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이므로 제가 받은 것 이상으로 저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장학재단에서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 돈이 없어서 고민인 친구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면서 이런 말을 꼭 전해요. “네가 성공했을 때 나중에 똑같이 흘러가게 해달라”고.

독불장군식 리더이기 보다는 팀워크를 강조하는 건가요?

제 아무리 훌륭해도 혼자서는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출한 리더라면 방향은 잘 잡아가겠지만 그래도 혼자 이루기는 어렵고 팀이 화합해서 가야 해요. 최근에 성공회대학교 인문학 강의를 들었는데 제가 존경하는 신영복 선생님께서 “숲을 이뤄라,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가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조직에서의 팀워크를 ‘더불어 숲’ 이라고 표현하시는 거죠. 워크홀릭인 제가 6개월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정말 즐겁게 공부했어요. 이 전에도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강의를 통해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죠.

더불어 함께 가는 리더를 강조했는데 리더로서의 성과를 생각하면 어려운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어느 대기업 회장님 말씀이 공부 잘하는 자식은 잘해서 밀어줘야 하고, 못하는 자식은 그 아이대로의 인생이 있으니까 밀어줘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모두 똑같은 퍼포먼스를 낼 수는 없어요. 구성원 각각의 역량이 다르니까요. 물론 조직의 팀워크, 시너지를 방해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해야겠지만,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못하는 일도 있지만 “다음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면 밀어주게 되죠. 부모 같은 마음이랄까요. 조직에는 숫자를 잘 만드는 친구가 있고, 영업을 잘하는 친구가 있고, 다소 느리게 가는 친구가 있고 빨리 가는 친구도 있어 그 조화가 팀이잖아요. 물론 속도가 느린 직원들에게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 회사에서 어떤 일에 저조한 성과를 내는 직원이라도 다른 회사에서는 높은 성과를 낼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찾아서 개발해 주려고 해요. 제가 키워낸 직원들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다른 곳에서 일할 때 오히려 더욱 빛나고 실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각각이 낼 수 있는 최적을 끌어주는 것이 아마도 진정한 리더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는 사람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기회를 주다가 제가 질책을 받고, 손해를 볼 때도 있었습니다만(웃음)

리더로서의 장점으로 ‘초긍정’을 꼽았습니다.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사실 실패도 많이 했죠. 프로덕트 론칭 했다가 실패하기도 했고 사람에 대해서도 실패한 적도 많았고,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그때 원인을 분석하고 항상 더 나은 솔루션으로 방향을 잡고 다시 역량을 집중해요. 더 나은 단계로 진전하기 위해서. 저도 사람인지라 성공하고 잘난 모습만 보여주고 싶잖아요.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 나를 극복하는 거예요. 잘못한 것은 빨리 시인하고 교정하는 거죠. 왜 강아지들이 적수가 안 된다 싶으면 바로 드러눕잖아요. 이미 벌어진 실패한 일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고 빨리 러닝포인트를 찾아 새롭게 적용하는데 신경을 쓰죠. 그리고 다시 배우고. 물론 아플 때는 고통스러워서 엉엉 울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딸들이나 친구 등 위로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얘기해요. 금요일 밤에 심야영화를 보며 풀기도 하고요.

조직에서 남녀 간의 장벽을 느낀 적이 있다면 역시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까?

자랄 때부터 오히려 여성 상위로 자라서 그런가, 남동생하고 성이 같다고 느끼며 컸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다르다는 건 많이 느꼈죠. 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였지, 여자이기 때문에 더 못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일례로 술도 비즈니스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해 즐기게 됐죠. 싱가포르에 있을 때는 괜히 저를 견제한 인도 남자 직원과 데킬라 내기를 해서 30잔쯤 마시고 이기자마자 뻗었어요. 그 후로는 저를 아무도 안 건드리던 걸요. 젊을 때는 힘도 엄청 셌던 것 같아요. 첫 직장에서 공장 체험하며 상자 포장할 때도 남자만큼 척척 해냈어요. 워크숍에서 남자들이 목욕하러 갈 때 같이 못 간 거 빼고는 뭐, 하하. 저는 제 나름대로 했지만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건 놔뒀어요. 힘이 아니라 일로 승부하는 거죠. 오히려 여자로서의 장점도 간혹 있었어요. 미디어 산업분야에는 특히 여성 영업이 없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누구를 만나던 한번에 각인이 됐거든요.

일도 잘하고 힘도 세고 술도 잘 마시고 너무 완벽한 모습 아닌가요.

제가 최근 아마추어 음악가 분들과 밴드를 하나 만들었어요. 음악을 좋아해서 모였고, 제가 마케팅을 잘하니까 매니저를 맡았는데 이 친구들이 저한테 그래요, “누나 (언니)는 처음 봤을 때는 완전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였는데 알고 보니까 허당도 이런 허당이 없다”고. 그런데 허당 퍼센트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어요. 못하는게 얼마나 많은데요. 돈도 잘 꿔주고 못 받고. 남의 일에 대해선 실수를 안 하지만 내 일은 많이 허당이에요, 저는 이것을 인간미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나 봅니다. 네트워크 관리는 잘했나요?

제가 제일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네트워크 관리예요. 네트워크라기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맞겠네요. 사람을 대할 때는 진실하게 해요. 물론 상대방이 다 제 맘 같이 않아서 상처도 많죠. 어릴 때는 그런 일로 슬프고 괴로웠는데 그것도 다 지나가더라고요. 저한테 같은 것이 되돌아오지 않더라도 사람관계에 진실하게 하려고 해요. 그리고 남의 일을 내일처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최근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목사님께서 성지순례에서 총무 일을 맡으라고 하셨는데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같이 간 분들이 제가 여행사 직원인줄 알았대요, 하하. 경비를 아끼느라고 인솔, 호텔 체크인 등등 여행사 가이드 없이 제가 직접 다 했거든요.

특히 어떤 네트워크에 관심이 많습니까?

제가 나중에 꿈꾸는 세상에 같이 있고 싶은 분들을 찾아가서 네트워크 관리를 해요. 예를 들자면 앞서 말씀 드린 인문학강의를 통한 관계는 비즈니스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제가 소통하고 싶은 분들과의 만남이지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진 분들이 많이 오거든요. 과정이 끝난 뒤에도 동창생으로 좋은 만남을 유지하고 있어요. 최근 자발적으로 교회에 나갔는데 교회공동체도 그래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데는 함께 나눌 좋은 관계와 공동체가 필요해서 갔어요. 지금 창업한 일에서 대표이사로서 회사의 목표를 만들면, 은퇴 후에는 아이들을 위한 뮤직테라피 일과 NGO에서도 일해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바른 코칭도 하고 싶어서 장학재단에서 대학생 멘토링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WIN에서는 차세대 여성리더가 될 후배들에게 경험을 나누고 있지요.

바쁜 활동 중에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커리어 관리를 위해서인가요?

제가 반전이 좀 많아요. 계기가 재미있는데 건국대에 오명 총장님 계실 때 스탠포드대와 조인해서 밀러 MOT(매니지먼트 오브 테크놀러지)스쿨이 만들어졌어요. 그때 산업계 분들을 겸임교수로 많이 초빙했는데 당시 구글에 상무로 있던 저도 나가게 됐어요. 제가 학사 밖에 없는데 박사들에게 기술경영혁신을 가르쳤죠. 한 학기 강의를 했는데 교수 평가 평점이 되게 좋게 나왔는지, 계속 강의를 요청해주셔서 3학기 동안 강의했어요. 토요일마다 3시간 강의를 위해 일주일 내내 준비하면서 공부를 많이 했지요. 지금은 지도 교수님께서 학위 취득을 권하셔서 석박사 공통과정에 들어갔습니다. 마케팅 실전 경험에 비해 이론적 체계가 약했는데 훨씬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좋아요. 제 수업을 듣다가 같이 공부하게 된 이들은 아직도 절 교수님이라고 불러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자녀 교육은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했습니까?

딸이 둘인데 둘 다 굉장히 독립적이에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방목형으로 키웠어요. 어릴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했어요. 공부하고 싶지 않다면 딸의 학비로 배우고 싶은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했지요. 아침에 늦잠을 자도 차로 데려다 주거나 택시를 태워 보내지도 않았고요. 몇 번 경험하더니 이 엄마는 한다면 한다는 걸 알더라고요. 무엇보다 꼭 가르쳐야 할 것은 엄하게 알려줬어요. 한번은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얼떨결에 친구 따돌림에 가담한 적이 있어요. 딸애랑 친한 친구가 어떤 애를 싫어해서 골탕먹이기 위해 스케치북을 숨겨놓는데 같이 가담한 거예요. 심하지만 제가 딸을 데리고 신고하겠다고 으름 장을 놓고 경찰서로 데리고 갔어요. “너는 굉장히 큰 잘못을 했으니 경찰에 신고 해야겠다”고. 아이가 어렸지만 절대 안 되는 일은 확실하게 알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요.

무서울 땐 무서운 엄마였군요. 그렇지 않을 때는 어떤 엄마였나요?

약속을 지키면 굉장히 잘해줬어요. 금요일 밤이면 팝콘 튀겨놓고 영화 서너편씩 보며 무비 나잇을 보내기도 하고 여행도 자주 다니고. 제가 애들한테 뭘 많이 사주지는 않았지만 여행은 굉장히 많이 했어요. 큰딸과는 3개월 유럽 배낭 여행으로 첫 직장의 퇴직금을 다 써버렸고, 2000년 밀레니엄 때는 뉴욕에서 마이애미까지 딸들과 가족여행을 했어요. 올랜도에서 전 세상의 폭죽이 다 터지는 걸 본거 같아요. 글로벌 시민이 되라는 메시지였어요. 큰딸은 지금 홍콩 과기대에 장학생으로 다니고 있는데 이번 학기는 교환학생으로 스페인에서 공부를 하고 왔어요. 자기가 아시아에서도 살아보고 미국에서도 살아봤는데 유럽도 경험해봐야겠다면서요. 모든 준비도 직접 알아서 알뜰하게 해서 갔어요. 둘째는 중학교 2학년때 스탠포드대 과학 인재 캠프에 지원하는 리포트를 모두 혼자 준비했고 캠프에 선발되어 미국에 갈 때도 다른 친구들은 엄마들이랑 가는데 얘는 혼자 보냈어요. 둘째가 그런 용기가 있어서인지 중3때인가 히말라야 트레킹에 가고 싶다 길래 적극적으로 후원해 보내 주었어요. 제 방목스타일이 그런 거예요. 물론 저도 속으로는 걱정되죠. 그러나 아이들의 결정에 강한 믿음을 보여주자는 것이 제 교육 방식이에요.

독립적인 DNA를 물려주고, 키워주었군요.

그게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으니까요. (웃음).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님께서 강의에서 “돈이 있으면 명품가방 사지 말고 경험에 투자하라”고 하셨어요. 저희 가족은 여행하고 좋은데 가서 맛있는 음식 먹고 얘기하고 경험을 나누는데 아낌없이 썼어요.



2. 나만의 길,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라

후배들에게 강의도 많이 하는데 어떤 조언을 해줍니까?

우선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해요. 졸업하면 이렇게 가야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날 파악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 대화도 많이 하고, 선배도 찾아가고 책도 읽어야 합니다. 찾아가는 과정에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고 성취감과 좌절도 맛보겠죠. 그러나 답은 자신이 찾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저는 여자로서 가정주부로 성실하게 사는 것도 큰 의미가 있고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일 하는 거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거죠. 지난번 강의 주제도 그거였어요.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다.’ 난 내 스토리가 있으면 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나를 찾는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가 받았듯이 군가에게 나누라는 겁니다. 우리는 관계로 만들어진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니까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스스로에게 솔직해야 해요. 못하는 건 못한다고 인정해야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조수미씨처럼 노래할 수 있겠어요? 안 되는 건 인정하고 장점에 집중해야죠. 사회에서의 전략이나 인생에서의 전략이나 다를 게 없어요. 저의 인생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더 가족관계를 잘 지켰으면 좋았겠다는 거예요. 실패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퍼스널 매니지먼트를 못했구나 싶긴 해요. 인내에 대해 좀 더 배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제 허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제가 선택한 제 인생, 그 안에서 충실했습니다. 충분히 감당하고 혼자서 열심히 일하며 아이들을 키워왔어요. 정말 사랑하지요. 두 딸이 없이 싱글로 살았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고자 노력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도 같아요.

솔직하고 과연 긍정적이군요.

이게 제 ‘초긍정’이에요. 나쁜 것을 긍정으로 바꿔놓죠. 제가 강의할 때 그 얘기해요.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면 심장이 마구 뛰어요. 그러면 저는 옛날에는 떨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살아있음을 느껴요. ‘아 내가 살아 있다고 심장박동이 가끔은 이렇게 울려주는구나’ 하고. 그걸 즐기기 시작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저라고 겁 안나겠어요? 콩닥거리고.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반전이 되는 거예요. 내가 정말 살아있구나 싶고 그럼 즐거워져요.

듣다 보니 스토리가 있는 인생입니다.

제가 오히려 감동 받은 것이 즐겁게 제 인생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제 얘기를 듣고 힘을 받았다며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멘토링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싶죠. 제가 멘토를 해주는 것 같지만 반대로 그런 친구들이 저한테 힘을 줘요. 나눔 강연 프로젝트 ‘여우비’ 강의에도 재능기부로 나갔는데 강의가 끝나고 나니 여대생들이 사인해 달라고 몰려와서 감동 먹었잖아요.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은 현재 설립한 LnA Consulting회사를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이 모여 신나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시켜 놓은 후에,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교육 분야예요. 어릴 때 상처 받고,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아이들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뮤직테라피 센터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도 공부하고 도움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그 배움을 나누고 싶은 게 10년 후의 인생지도입니다. 딸들이 학업을 마치면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보려고요. 제가 함께 한 네트워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거나, NGO에서 보다 더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가능하다면 리더십이나 청소년 특강은 재능기부로 많이 해요. 단 한 명의 청중이라도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저는 가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