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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길을 만든다

삶의 길은 다양하다

김미경 / 금융위원회 외신대변인


1. 내 이력의 키워드? 커뮤니케이션!

기업에서 NGO, 국제조직, 정부기관까지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습니다. 이직 시 일관되게 본 키워드가 있나요?

제 이력의 키워드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민간과 공적인 영역 나아가 국제적인 영역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콘텐츠가 달라질 뿐이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 집행하고 기관장으로서 운영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제품부터 기업이나 기관 등을 널리 제대로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 기획 집행부터 정책들을 해외로 홍보, 양방 소통 등이 다 커뮤니케이션이니까요. 흔히 홍보부라고 하면 언론만 상대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외국에서는 소비자와 NGO, 공공기관까지 다 아우릅니다. 이제까지 저는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의 타겟 오디언스로 기업, NGO, 정부부처, 심지어 로비회사까지 경험했습니다. 나아가 국제조직에서도 몸을 담갔습니다. 낮은 연차에서는 소비자마케팅부터 시작하여 로비, 대정부 국제조직까지 소위 PR에서 하는 분야는 거의 직접 경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정부 부처에서 해외 홍보를 맡고 있습니다.

20여 년 경력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들려주세요.

대학교 4학년 때 무역업체에 잠깐 다니다가 대학원에 다녔습니다. 석사 취득 후 광고대행사에 이력서를 냈어요. 당시 7차까지의 과정을 거쳐 최종 7명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던 날, 그 사이에 결혼한 저는 마침 그날 병원에서 “축하합니다. 아기를 가지셨어요”라는 얘기를 들었죠. 광고대행사는 워낙 근무강도가 높았던 터라 결국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했습니다. 출산 후 홍보대행사에 들어갔는데 대행사이다 보니 기업이 맡기는 일에 대해서만 알 뿐이라 한계가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한국 월트디즈니로 옮기게 됐는데 여기서부터 제가 ‘일’을 만들기 시작해요. 지금은 많이 개최하고 있는 사회적 기여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여 집행, NGO과 결연하여 희망을 나누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최했습니다. 예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는 애니메이션 출시 기념으로 이왕이면 뭔가 의미 있는 행사를 해보자 싶어 백혈병,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을 위해 병원을 찾아 시사회를 개최, ‘노틀담의 꼽추‘는 북한어린이 돕기 위해 유니세프와 행사하며 신촌 일대가 마비 되기도 했습니다. 이젠 기업에서 많이 하는 방법이나 그 당시엔 선구자적인 프로그램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일들을 기획하면서 NGO에 관심을 갖게 돼 펄벅재단에서 한국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서 당시 가장 큰 규모의 펀드를 따 내기도 했습니다. 그 제안서가 모범 답안으로 NGO 업계에 회자 되기도 했습니다. 같은 뜻을 가진 작은 여성단체들과 연대하여 활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크게 할 수 있었죠. 청와대에서 큰 행사를 치루게 되기도 하고 펄벅여사의 공로를 홍보, 정부에서 부천 소사에 펄벅기념관을 건립하게 이끌어 냅니다. 그 당시 건물 세입자에서 이젠 기념관에 펄벅재단이 주인으로 있습니다. 펄벅재단 본사인 미국에서 여러 나라 홍보마케팅을 지원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고 코카콜라에서는 홍보업무를 전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지사인 코카콜라 파 이스트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선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에 홍보 노하우를 전수, 컨설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 후 아셈 국가들의 중소기업들을 지원하는 ASIEC이란 국제조직의 기본 프로그램과 운영틀을 셋팅하는 사무국장으로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많은 나라의 정부 및 기업들에게 조직에 대해 홍보하는 일이 중요했지요. 설립 후 삼개월 만에 EU 환경부 차관이 내방, 함께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쭉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다 보니 찾는 곳이 많았나 봅니다. 코카콜라나 금융위원회에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국내에 이어 미국 펄벅재단 본사에서 러브콜이 와서 미국에서 일했는데 도중에 기관방향이 달라져서 지향하는 바가 달라 귀국했어요. 얼마 뒤 헤드헌터를 통해 코카콜라에 들어가 홍보의 외연을 넓혔습니다. 한국 지사 근무에 이어 말레이시아에 파견 근무할 때 딸과 함께 있다가 귀국을 앞두고 있었는데 딸이 1년만 더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해 고민하다 사직, 집안 맘으로 아이 뒷바라지 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간호를 하기 위해 한동안 쉬기도 했고 상황이 정리 되었을 때 금융위원회에서 난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공통점 외에 이직 시 고려한 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급여를 보고 옮겨 다닌 것은 아니고, 저를 필요로 하면 갔습니다. 드라마 ‘직장의 신’의 주인공 미스김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직장에 가서 일하는 것처럼요. 몇 년 일하다 보면 시스템이 잡혀 제가 없어도 되는 상황이 오는데 그러면 뭔가 새롭게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기는 거여요. 그러면 자리를 옮겨 다시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작업이 저를 탄력화 시킨다고 해야 할까요. 앞으로도 전문가로서 사회에 보다 더 기여할 수 있는 기회라면 새롭게 다시 시작 할 열정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나이에 욕심이 많다고 하는데 전 나이를 잊고 사는 모양입니다.

이 자리에 발탁된 능력이나 비결은 무엇일까요?

외신대변인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보면 일단 영어실력을 봤겠죠. 커리어 면에서는 제가 계속 커뮤니케이션 일을 해오면서 커리어를 발전시켜 왔고요. 여기에 홍보업무를 알아야 하고 금융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관계형성 잘 할 수 있는 신뢰감 있는 태도와 자세도 중요하구요. 위기에 대응하는 통찰력과 신속대응력도 필요하지요. 2008년 금융위기설이 해외로 와전되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은 후 이 자리가 신설되었으니까요. 금융에 대해서는 여기 와서도 배우고 있습니다. 무게감이 있어야 하니 적당한 연차도 필요로 했고요. 그리고 제가 그 동안 이미지나 평판 관리를 잘한 점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전 직장에 평판 조사를 한 것으로 들었으니까요.

금융위원회 외신대변인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나요?

외신대변인은 한국에 상주하는 외신기자와 해외 언론의 기자들, 외국의 신용평가사 및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한국의 금융정책 기관을 대표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주업무입니다. 주창구가 되는 거죠. 일례를 들면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감돈다거나 금융위기 위험이 커지거나 하면 궁금증에 답 해주는 게 제 일입니다. 저는 오자마자 SWOT 분석으로 외신팀 강점과 약점을 진단했습니다. 저희의 주 소비자인 기자들과 신평사 애널리스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구글 서버이 통해 그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한 달 만에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요즘은 또 SNS 홍보가 필수니까 영어 블로그와 페이스북 작업도 개시했고요. 경제부처로서는 영문 SNS를 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처음에는 이 작업을 왜 해야 할까 하던 팀원들이 지금은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합니다. 저는 팀원들한테도 일을 그때그때 지시하기 보다는 전담 업무를 주고 책임감 있게 오너십을 가지고 해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케스트라라는 팀의 지휘자죠 팀원들은 직접 자기의 악기들을 가지고 연주를 하죠. 저희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은 무대에 올린 작품과 같습니다. 시각 청각 콘텐츠 등 다양한 방면에서 감각이 있어야 하니까요. 아주 미세한 차이인 듯 해 보이지만 <아>와 <어>는 엄연히 다른 뉘앙스이니까요. 그런 예민한 감각을 계속 키워나가게 하는 훈련도 후배양성이지요. 개인적으로 홍보를 저는 <전방위 예술>(total art)라고 생각됩니다.

외부에서 새 인물이 들어와 의욕을 보이면 흔히 ‘일을 벌인다’는 말을 듣습니다. 반응이 어땠습니까?

중요한 키워드는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영향이 증폭되게>입니다. 일하는 방식이 합의를 이뤄냅니다. 팀원들에게 많은 의견과 생각을 듣는 것을 선호합니다. 혼자보다는 여러 명이 생각해내면 다양성이 있으니까요. 찬성한 팀원보다는 반대한 팀원의 의견을 더욱 경청합니다. 반대한다는 것은 그만큼 확고한 생각이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 의견은 반드시 들어보고 진지한 검토를 해야 하니까요.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제 밑에 똑똑한 직원 한 명이 매사 시큰둥하고 의욕이 없어 보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얼마나 신나게 열심히 일하는지… 본인한테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니 의욕을 보이는 거죠. 상사로서 신뢰를 주고 얻은 것으로 이해합니다.

새로 만들었다는 브로셔가 색상이나 디자인에서 감각적입니다.

금융위에 새로 와서 제작을 맡게 됐습니다. 원래는 다른 과 업무였는데 절 전문가로 여겨 주신 전 차관님 덕분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산상의 문제로 디자인 대행사를 쓸 수 없었습니다. 인쇄비만 들었습니다. 금융시장의 건전성 투명성 형평성을 모토로 한 일관성 있는 다채로운 미래지향적 정책을 한국시장에 맞게 펼쳐 간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미지와 색상, 글자 폰트까지 직접 골라서 휴대 간편한 사이즈로 제작했는데 반응이 좋습니다. 민간 냄새가 많이 난다는 코멘트도 있었는데 그만큼 신선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정부부처의 비슷비슷한 이미지 컷, 예를 들어 가족이 나와서 즐거운 표정 짓는 전 그런 이미지 컷을 <보건복지부>이미지라 부릅니다. 또는 무조건 지구본이 나와 <글로벌>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구요. 저는 식상한 이미지를 지양하고 표지 디자인을 저희 기관에 맞게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안으로 앉혔습니다. 새 정부, 새 국정과제에 맞춰 명함도 새로 만들었는데 많은 이들이 그렇게 바꾸겠다며 반응이 긍정적입니다.

무엇이든 창의적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나 보군요.

제 재주 중 하나가 툭툭 따로 던져진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무엇인가 크게 만들려는 노력이 아닌 가 싶어요. 왜 면접 때 성격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잖아요. 제가 우연히 갤럽에서 하는 갤럽의 강점 조사 해봤더니 제 특성이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최고의 강점은 성취도가 높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크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디에이션, 마지막이 개인화였습니다. 개인화는 자칫 개인주의로 잘못 이해되는데 그게 아니라 리더로서 사람을 대할 때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해줄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개인의 성향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각자에 맞는 선물을 맞춤으로 할 줄 안다는 거죠. 조직에서도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친구는 야단을 치면 더 성과가 나오고, 어떤 친구는 야단치면 기가 죽어 더 못하기도 하니까 각각 고려하는 겁니다. 하하, 잘못하면 자랑한다고 그럴 텐데 이렇게 객관적인 조사결과이기에 얘기하기 편합니다. 누구나가 다 강점들이 있고 예전에는 약점을 보완하려 했지만 이제는 강점을 더욱 발휘, 증폭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팀원 개개인을 배려하는 것 같습니다. 팀원들과 업무상 소통은 어떻게 합니까?

저는 리더라기보다 퍼실리테이터, 조력자라고 생각합니다.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세세히 함께 세워서 공유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팀원들에게 분배한 다음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고 성과에 따른 평가와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는 저도 아이디어를 내고 팀원들도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합니다. 황당하고 실현 가능성 낮은 아이디어도 좋으니 어떤 의견이든 내달라고 한 뒤 나온 의견들을 정리하고 결정하죠. 이때는 앞서 말씀 드린 대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해요. 다른 의견이 있는지 충분히 들어주고 다같이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는 거죠.

금융위도 남성 비율이 높은 조직입니다. ‘담배나 한 대’로 대변되는 남자들만의 네트워킹에서 소외되는 부분은 어떻게 해소합니까?

조심스럽네요. 솔직히, 남성이 대부분을 이루는 조직에선 좀 어렵지요. 한계가 있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엘리트들이 많아서 신사 같은 분들이 많습니다. 간혹 다른 부처 남성 위주의 조직에서는 아직도 여성들을 부담스러워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하는 사람들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정부부처에서도 여자사무관들이 많아서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전 직장에서 만난 분은 딸이 넷이나 있는데도 여직원은 터프하게 얘기하면 울 것 같다며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제 세대에서는 여자들이 완벽해 보이면 남자들이 무서워하니까 가끔 모른 척도 하고 빈틈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자 선배가 제게 “면접 갈 때도 너무 똑부러지게 입지 말고 약간 아줌마스럽게 촌스럽게 하고 가고 눈 똑바로 뜨지 말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저도 나름 똑떨어진다 그런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했는데 사실 빈틈이 없으면 차가워 보이는 선입관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해요. 하지만 똑부러진 사람은 차가워 보이지만 일도 그렇게 한다는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어 저는 개인적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사람 좋아보이는 사람보다는…

남녀 리더십에도 차이가 있다고 보나요?

남성이 마초적이라면 여성은 부드럽다고 흔히 얘기 하지요.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이상적으론 남자고 여자고 남성성과 여성성이 적당히 섞여 있었으면 해요.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편안하게 느껴져요. 대부분 남자들은 충성과 복종으로 라인이 형성되지만 일방통행이고 라인이 흔들리면 관계도 소멸될 수 있어요. 반면 여자들은 상하관계라기 보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능력 위주예요. 상대적으로 라인이 만들어지지 않고 충성과 복종이 어려울 수 있죠. 리더로서 권위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본인이 내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리더라는 것이 결국은 그 팀이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로 하되 그 스타일도 다를 것입니다. 굳이 남녀가 다를 필요도 없고 남녀가 이렇게 다르더라도 불일치할 때도 있죠. 전 리더란 팀원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해서 우리의 목표를 정하고 달성, 역량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이라고 봅니다. 결국은 개인차가 있겠죠.

그렇다면 ‘외유내강’이 여성에게 어울리는 리더십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나라는 외유내강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사장이다 사령관이다 이러면 몰라도 ‘원 오브 더 리더’라면 외유내강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비쳐질 수 있는 사회거든요. 앞에서는 몰라도 뒤에서는 여자가 왜 저러냐는 말 많이 하잖아요. 드라마에서 보면 일하는 여성은 거의 대부분 엄청 독하고 터프하고 살림 못 하고 관계도 일방적이고. 저는 인간적으로는 터프한 스타일이 아니지만 업무는 그렇게 하기에 이중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을 듯 해요. 외유내강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에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 나온 리더십의 요인을 항상 염두에 두려 합니다. 따뜻함, 형평성, 강인함, 겸손함, 신뢰감, 개인존중을 겸비한 리더로서 팀을 이끌어 갈려고 노력합니다. 전 업무적으론 터프하고 인간적으론 따뜻한 리더를 지향하는 데 이 또한 개인차가 있을 듯 합니다.

네트워킹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네트워킹이 모임에 가서 명함 뿌리고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함 교환해봤자 몇 달, 몇 년 지나면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잖아요. 가치 있는 네트워킹이 아닌 거죠. 사람을 진정성 있게 대하면 네트워크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가져라>이 인간관계의 힘입니다. 진정한 관계라면 제가 소수만 알고 있더라도 그 넝쿨이 몇 십 배로 늘어나고 확장됩니다. 그리고 현재 업무랑 상관없다, 영양가 없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또한 바쁘다고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니까요. 사람들이 사는 사회이다 보니 네트워킹이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외국도 학연 지연 다 있는 거고 그것이 중요하죠.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변인께 일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일은 항상 당연히 저의 한 부분이에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죠. 죽을 때까지 일을 할 것 같습니다. 무보수든, 자원봉사든 뭐든지요. 집에서도 한가롭게 놀지 못해요. 쉴 때도 항상 바빠요. 제 모토는 열심히, 일 할 때도 놀 때도 열심히 하기에 일이 놀이고 놀이가 일인 경우가 많죠. 업무가 꼭 일인 필요가 없죠. 놀지만 네트워킹 형성하고 있을 때도 있으니까요.



2. 인생은 긴 여정, 조바심 내지 말고 가자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를 잘 지켰나요? 후배들에게도 지키라고 하고 싶으세요?

그럼요, 밸런스를 잘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해요. 한 친구는 정말 직장에만 열심히 했는데 아이 얼굴도 많이 못보다 보니 유대관계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회사에 그렇게 충성을 바쳐 가족에게 희생하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가능하다면 완급 조절할 필요도 있어요. 전에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할 때 9시까지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했어요. 탄력근무제가 도입되기 전이었지만 제가 먼저 회사에 제안해, 출퇴근 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로 조절했습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퇴근 후 집에 갖고 와서 일했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땐 주말엔 아이랑 출근 많이 했어요. 퇴근 후 회사에 계속 남아 있는 건 습관일 수 있어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포기해야 해 고민하고 갈등한 기억이 있나요? 있다면 어떻게 대처했나요?

해외에서 임무를 끝내고 한국 지사로의 귀국 준비를 하던 중 딸이 1년만 더 체류,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사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제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교육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해서 퇴사하고 1년을 더 머물렀고요. 제 딸은 저한테 너무 미안해해요. 잘 나가던 엄마가 자기 때문에 그만뒀다면서 “엄마 나는 엄마한테 빚진 게 많아” 라고 생일 성탄절 어버이날 카드에 빼놓지 않고 언급합니다. 부모님 병수발로 인해 정상적인 회사생활이 어려워져서 그만둔 적도 있어요. 이때도 고민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님께서 저도, 제 아이도 키워주셨는걸요. 제가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살짝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때 많이 풀었어요. 어머님이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나마 그런 시간들이 있어 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다 가셔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물론 더 잘 해 드렸어야 한다는 생각은 끝이 없습니다.

좋은 엄마, 따뜻한 딸이었습니다.

이건 선택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커리어에 지장이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해드리고 모친을 다른 세상에 보내드려서 그나마 최선은 아니지만 노력은 했으니까요. 일하는 목적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보다는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공헌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아이에게, 부모님께 공헌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물론 그때 직장을 계속 있는 것을 선택했다면 지금 더 높은 보수를 받고 승승장구 했을 수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주위에 책임감을 갖고 가끔은 탄력적으로 살아가면 제 인생의 완성이고 행복 아닐까요.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저도 있고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저도 분명 제 존재이니까요.

제2의 김미경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인생은 꼭 방법이, 해결책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았으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커리어를 가지고 리더로서 엄마로서 제대로 살기에는 엄청나게 터프해져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사임당도 계속 친정집에서 기거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낼 수 있었다는 게 정설이니까요. 길은 다양하다고 봅니다. 저처럼 직장에 다니다가 아이 교육 문제로 사직, 또 그 이 후 부모님 병간호도 할 수 있는 거죠. 현재 갖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니 조바심 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좀 더 탄력성 있게, 유연하게 삶을 살다 보면 어떨 때는 흐를 때도 있고, 반짝일 때도 있고 그래요. 개인적으로 ‘let it flow let it glow’를 좋아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스스로 언제 행복한 지 자기 안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외부에서 이래라 저래라, 처세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또는 유명인이 저랬다에 흔들리지 말고 본인의 삶을 개척하길 바래요. 남에게 보여 주는 삶을 사는 건 아니쟎아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일단 알고, 원하는 대로 살아야 발전도 있을 테니까요. 자기 목소리 자기만의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 가는 것. My Way가 중요하죠.